서울 광화문 네거리의 한 빌딩 옥상 전광판 뒤편에서 농성중인 6명의 노동자들이 지난달 17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맨 앞의 삭발한 남성 장재영(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씨 뒤로 고진수(세종호텔 노동자), 오수일(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 이인근(콜트콜텍 노동자)씨가 차례대로 서 있다. 오수일씨 뒤에는 김경래(삼표동양시멘트 노동자), 김혜진(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씨가 주먹 쥔 손을 위로 뻗은 채 서 있다. 장재영씨 제공
1일 오전 6시 콜텍 해고노동자 이인근(52)씨의 눈가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이씨는 자연스레 잠에서 깼다. 간밤을 지새운 곳은 아파트 10층에 맞먹는 지상 40m 높이의 건물. 그는 이 건물 광고탑을 떠받치는 길이 약 2m, 폭 60㎝의 철제 구조물에 머물고 있다. 밤이 되면 겨울 파카와 침낭 두 개로도 막을 수 없는 찬바람이 불고 낮이면 땡볕에 살 닿기가 무섭게 달궈진다.
이씨 등 6명의 노동자들은 18일째 고공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4월14일 ‘정리해고·비정규직 노동악법 철폐, 노동법 전면 제·개정, 노동3권 완전 쟁취’를 주장하며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의 한 고층 건물에 올랐다.
이씨는 2007년부터 싸움을 이어온 악기 회사 콜텍의 해고노동자다. 집회·해외원정투쟁 등 갖은 방법으로 처지를 알려왔지만 아직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씨와 함께 고공 농성에 참여한 노동자 5명도 불법파견·부당해고·노조탄압을 겪은 이들이다.
이들이 내려다본 광화문 거리에 ‘노동’은 지워진 지 오래다. 지난 촛불 정국 때 비정규직 철폐 등 노동 이슈가 ‘반짝’ 떠올랐을 뿐 세간의 기억 속에서 금세 사라졌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아직 감옥에 갇혀 있다.
이씨는 1일 낮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누구든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노동 악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날 농성장에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 속 아나운서는 ‘노동자의 날’ 대신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을 썼다.
이씨는 대선 판에서도 ‘노동’은 뒷전인 듯해 씁쓸하다. 광화문 네거리에는 온종일 쉬지 않고 대선 후보의 로고송이 울려퍼진다. 그러나 유세에서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는 후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민생을 생각한다는 후보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흉내만 내고 노동 문제를 외면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금만 먹는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다들 6~7㎏ 넘게 체중이 줄었고 혈당도 정상 수치 이하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저 밑에 광화문 거리에서 국민들이 철옹성 같던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렸잖아요. 많은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저희를 응원해준다면 우리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수화기 너머로 이씨가 힘겨운 숨소리를 냈다. 127번째 노동자의 날 한국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처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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