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페미니스트 그룹 ‘강남역10번출구’ 주최로 집담회 ‘강남역 이후, 다시 만난 세계’가 열렸다. 왼쪽부터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이지원 강남역10번출구 활동가, 안현진 강남역10번출구 활동가.
“지난해 강남역 10번출구에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고백이 줄을 이었다. 여성으로서 겪어온 폭력의 경험이 이 살해사건과 연장 선상에 있다고 느낀 것이다. 한 여성이 살해당한 개별사건 때문에 전국적인 공분이 일어났다면, 이 공분에 대해 사회가 응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질문하고 싶었다.”(페미니스트 그룹 ‘강남역10번출구’ 이지원 활동가)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1년이 흐른 지금, 사회는 이 질문에 얼마나 충실히 응답해왔을까.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를 맞아 13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강남역 이후, 다시 만난 세계’ 집담회가 열렸다. 페미니스트 그룹 ‘강남역10번출구’가 주최한 이 자리에 이지원 활동가,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패널로 참여했다. 패널들은 일반 참석자들과 함께 강남역 10번출구 포스트잇 추모 운동의 의미를 되짚고, 젠더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법·제도적 변화에 대해 고민했다.
‘강남역10번출구’의 이지원 활동가는 ‘강남역 10번출구’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되짚었다. 당시 시민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젠더 폭력’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피해 경험을 이야기함으로써, 여성들은 피해자로 멈추지 않고 여성혐오가 존재하는 이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내 피해 경험이 개인의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역사의 ‘증언’이 되었다. 정치적 말하기의 경험을 통해 이 세계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페미니즘 활동을 이어가다 직장을 퇴사하고 여성학과에 진학하거나 진로를 페미니즘 활동으로 바꾼 이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며 “강남역 사건은 여성들의 삶을 바꿔놓는 계기로 작동했다”고 말했다.
사건 후 정부의 대응에 대한 질책도 이어졌다. 당시 ‘여성대상 강력범죄 종합대책’이 발표된 후, 재발방지 대책으로 ‘정신장애인 강제 행정입원’ 등이 거론됐다. 여성에 대한 혐오를 다른 소수자의 혐오로 대체한 것이다.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강남역 사건은 뿌리 깊은 여성혐오에서 기인하며 이런 현실을 직면해야만 또 다른 죽음을 멈출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국가는 가해자를 정신장애인으로 특수화하면서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가 근본적인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다혜 연구위원은 “정부 대책은 ‘가해자 처벌·피해자 보호’에 그쳤다. 여성혐오로 가득 찬 사회를 평등하게 바꾸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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