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남지은의 조카 덕후감
5.‘역변’이 온다
아아악. 안 돼. 누구 마음대로 앞머리를 자른 거야. 조카를 보자마자 올케한테 소리쳤다. 아마 속으로 이랬을지도 모른다. ‘별….’
6살 조카 남대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데 가끔은 아프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앞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다. 애가 나를 닮았는지 갈수록 얼굴이 동글이가 돼간다. 한두 해 전 사진만 봐도 세상에 이런 럭비공이 없는데, 한 살 더 먹더니 농구공이 보인다. 그게 앞머리를 자르니 더 도드라진다.
“대현은 얼굴만 커지나 봐.” 올케한테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웃음이 나지 않는다. 살짝 불안하다. 정말 그러면 어떡하지. 이게 바로 세상 모든 고모·이모·삼촌들이 두려워한다는 ‘역변 현상’이란 말인가. 첫 조카한테서 이미 경험했다. 태어나자마자 코가 너무 오뚝하니 조인성처럼 잘생겨서 산부인과 간호사들이 조카만 업으려고 했다는데(뭐, 어디까지나 언니의 주장이다) 10대가 된 그는 지금… 코는 오뚝하다.
아무리 고모가 조카를 사랑한대도 그건 엄밀히 말해 조카가 예쁠 때다. 외모의 예쁨이 첫 번째지만, 성격도 있다. 말도 잘 듣고, 고분고분 고모를 잘 따라야 예쁘다. 그런데 대현이 요즘 장난기도 늘었다. “언니, 대현이 이러고 놀아요”라며 올케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윗옷을 머리끝까지 올려 뒤집어쓰고는 좀비란다. 아무리 봐도 가오나시인데, 좀비란다. 뭐가 됐든 내 조카는 이런 짓궂은 장난은 안 할 줄 알았다. “이러고 못 놀게 해”라며 정색하고 답장을 보냈다. 올케는 또 ‘별…’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메시지를 보내면서 생각했다. 앞머리를 짧게 자른 대현이 가오나시 놀이를 하면 최악이겠구나.
그럴 땐 내 사랑이 이것밖에 안 되나 자괴감이 든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내 조카인데 역변할까요”라고 묻는 고모·이모·삼촌의 글이 꽤 많다. “눈만 이쁘게 크느냐 눈·코·입 얼굴형이 모두 조화롭게 크느냐가 관건”이라는 진지한 대답이 달린다. 조카 사진을 올리고는 “내 조카는 아직까지 역변은 없다”며 기뻐하고, “역변하기 없기!”라며 스스로 주문도 건다. “벌써 역변 현상이 일어난다”고 낙담하는 글에는 “힘내라” 위로하고 공감을 나눈다.
동생은 “니 애가 아니니 역변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저 조카가 지금처럼 쭉 예쁘고 말도 잘 듣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변화는 ‘관계의 역변’이다. 나를 ‘장미별’(1회에 소개했지만, 고모 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장미처럼 예쁘다고 해서 조카가 붙인 별명이다. 흠흠)이라 부르며 달달한 노래를 불러주던 나만의 남자가, 만나면 폭 안겨 뽀뽀를 해대던, 고모를 자주 못 봐서 슬프다던 나만의 남자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삼초온~ 하며 쪼르르 안기던 조카들이 거리를 둡니다” “조카들이 갑자기 존댓말을 씁니다”라며 슬퍼하는 그들의 그 순간이 나에게도 곧 올 거라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찢어진다. 아, 세월이 야속하다.
대현아, 동글이가 되어도, 개구쟁이가 되어도 좋으니, 나만 잊지 말아 줘.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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