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이 교수의 이름으로 학생이 책을 빌릴 수 있게 하는 ‘대리대출 제도’를 시행해 논란에 휩싸였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교수의 책을 학생이 대신 빌려 가게 하는 ‘책셔틀’ 제도”라는 비판이 일자, 학교 쪽은 “교수와 학생의 공동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서비스”라고 해명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은 지난 15일 누리집을 통해 ‘교수 대리대출’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게시글을 보면, “교수의 대리대출자를 미리 도서관에 등록해놓으면, 교수의 신분증 없이 대리대출자의 S-CARD(대출증)만으로도 언제든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도서관 쪽 설명을 종합하면, 교수 한 명당 대리대출자로 최대 2명을 지정할 수 있다. 대리대출자는 대학 구성원으로 제한된다. 도서관은 “도서 연체, 분실 등에 관한 모든 책임은 교수에게 있다”며 “도서 변상비, 연체료 등은 교수가 직접 온라인에서 결제해야 한다”는 유의사항도 공지했다. 도서관이 해당 게시글에 첨부한 이미지에는 ‘스승의 날’이라는 문구와 카네이션 그림이 포함돼있다.
이 게시글이 알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교수님들이 도서관 출입하고 다니는 데 뭔가 불편한 부분이라도 있나, 도대체 왜 학생이 대신 책을 빌려 가야 하는가. 학생이 교수 심부름센터도 아니고, 대놓고 셔틀을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해당 공지가 “‘스승의 날’을 맞아 기획된 이벤트가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서울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학생은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교수님 대출 셔틀시키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전에 교수님이 책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 신분증을 빌릴 수 없으니 내 신분증으로 책을 빌린 적이 있었다. 중앙도서관에서 이걸 시스템으로 허용해주면 그런 ‘셔틀’이 더 활발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관 쪽은 “교수와 학생이 함께 진행하는 공동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서비스”라고 해명했다. “교수의 개인 연구를 위한 대출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의 공동연구 프로젝트 때 자료 대량 대출을 위해 마련한 제도”라는 게 도서관 쪽 설명이다. 도서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 등 연구원들이 공동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공동연구원들이 필요로 하는 책들이 많이 생긴다. 교수가 대출 기간이 길고 대출 가능한 책 수가 많기 때문에 공동연구원들이 교수의 이름으로 대신 책을 대출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는 공동연구원이 교수 신분증을 가져오면 교수에게 일일이 전화해 확인 후 책을 빌려줬다. 외국대학을 벤치마킹해, 오프라인으로 번거롭게 처리했던 것을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새 시스템을 마련하게 됐다. 새로운 시스템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말했다.
‘스승의 날 맞이 이벤트 논란’에 대해서 도서관 쪽은 “스승의 날 이벤트 개념도 있다”며 “교수가 학생에게 신분증을 빌려줘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해준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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