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환을 앞둔 1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 여정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는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향후 검찰개혁의 실무를 총괄 조정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취임 직후부터 “공수처 설치는 검찰을 죽이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살리는 길”이라며 공수처 신설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검찰의 부정적 반응은 여전하지만, 일부에선 지난해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뇌물 사건’ 수사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공수처 설치를 피해 가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법조계에선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권 분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세부 권한과 인사권, 수사 범위 등과 관련해 촘촘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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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치 요구 어느 때보다 높아♣?] 공수처 설치법은 2002년 처음 국회에 상정된 이후 지금껏 수많은 법안이 번번이 보수정당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수처가 ‘옥상옥’이라거나 또 하나의 거대 권력기관 탄생이라는 검찰의 집요한 설득과 국회의원들을 수사하는 또 다른 기관의 탄생을 바라지 않는 의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진경준 사건과, ‘스폰서 의혹’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 청와대의 특별감찰관 활동 무력화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검찰 내부 비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 비리를 독립적으로 수사할 기구의 필요성은 더 커졌다. 한 검찰 간부는 “진 검사장 사건 당시 언론에서 문제가 크게 불거질 때까지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비리 검사가 있더라도 내부에서 계좌추적 등 고강도 감찰을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독립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공수처가 생기면,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불기소처분과 이른바 ‘사건 덮기’에 대한 견제 효과가 생긴다. 일선 검사들도 공수처를 근거로 삼아 ‘윗선’의 수사 무마 압력에 저항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참여정부는 부정부패 추방을 위한 개혁방안으로 공수처를 추진했을 뿐, 검찰 권력 분산이라는 검찰개혁 과제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번엔 참여정부 때와 달리 검찰개혁 방안으로서 공수처 설립의 의미를 분명히 다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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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치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문제는 ‘디테일’이다. 새 정부의 공수처 안은 포괄적이다. 공수처의 세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총 3건으로 박범계·이용주 의원, 양승조 의원, 노회찬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것이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공수처장의 임명 절차 및 자격, 조사 대상을 어디까지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김선수 변호사는 “검사·판사를 수사 대상에 포함하고, 수사·기소권을 갖춘 독립된 기구로 설치하는 게 중요하다. 처장은 국회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단독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때는 공수처를 국가청렴위원회 소속으로 설치해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려고 했고, 당시엔 여야 합의로 처장을 임명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국가인권위 사례에서 보듯 조직의 책임자를 뽑는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며 “독립성을 확보하고 정치적 논란을 줄이려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도록 하는 등 여야 합의를 통해 공수처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수처 수사 대상 범위도 법안 처리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2002년 처음 국회에 발의됐던 공수처 법안의 대상을 보면, 국무총리와 국회의원, 장차관, 감사원장, 감사위원 및 사무총장, 국가정보원 원장 및 차장, 광역단체장, 경찰청 청장과 차장, 법관과 검사, 군 장성 등이었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법안에는 이에 더해 행정부의 1급 이상 정무직 공무원(감사원 등은 3급 이상), 국회사무처의 정무직,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 국정원 소속의 3급 이상 공무원 등으로 확대됐다.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를 포함한다. 현재 특별감찰관이 맡고 있는 청와대 참모들과 친인척 감시 등의 업무도 어떤 식으로든 구획정리가 필요하다.
현재 발의된 법안에서는 수사권 발동과 관련해 △범죄행위를 인지했을 때 △감사원 등 외부 기관의 수사 의뢰가 있는 경우 △국회 재적 의원 10분의 1 이상(30명)의 수사요청이 있는 때로 돼 있지만, 고소·고발이 있을 때 수사를 개시할지 등을 둘러싼 논의도 필요하다.
공수처 설치를 위해선 무엇보다 속도가 생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에서도 마냥 검찰개혁을 거부하기에는 부담이 큰 만큼 정부가 여론을 잘 활용해 그 힘으로 끌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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