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김정호(오른쪽) 대표가 2008년 봉하마을에서 친환경 벼농사 농법을 의논하고 있다.
‘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 표지.
퇴임뒤 ‘자연인 노무현’ 10년 기록
8주기 ‘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 펴내 부산대시절 구속때 변호사로 인연
퇴임 이사 돕다 ‘친환경벼농사’ 자임
“슬픔 잊고자 미친듯이 농사 매달려” 김 대표는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기록관리비서관을 지냈고, 2008년부터 10년째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유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노무현’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관리했던 비서관으로서, 퇴임 이후 ‘자연인 노무현’까지 기록한 것이다. <바보 농부 바보 노무현>은 2008년 2월25일부터 이듬해 5월23일 서거할 때까지 15개월 동안 노 전 대통령의 행적과 고민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퇴임 이후 왜 그렇게 친환경농업에 애착을 보이며 매달렸는지, 그의 못다 이룬 유업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소개한다. 김 대표는 1979년 부산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17년 만인 1996년에야 대학을 졸업했다. 그 사이 79년 부마항쟁, 80년 광주민중항쟁, 87년 6월항쟁 등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과 함께 했다. 84년 11월 민주화 시위로 구속됐을 때, 그를 변론한 인권변호사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졸업 뒤 부산에서 재야 민주화운동을 계속한 그는 2003년 청와대 비서실로 들어가, 행정관 등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까지 재직했다. “대통령의 귀향과 함께 내 인생도 꼬였다.” 김 대표는 “2008년 2월25일 대통령과 함께 귀향했을 때 봉하마을에서 내 자리는 없었다. 딱히 붙잡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부산 집으로 가도 그만이었다. 그래도 며칠간 봉하마을에 남아 허드렛일이라도 거들고 싶었다. 그런데 당장 귀향 다음 날부터 미어터지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느라 대통령이 이삿짐 정리도 못 한 채 바쁘니, 잠시 도와주려고 머물던 나 역시 ‘꼼짝마!’였다. 청와대 있을 때보다 더 바쁜 날들이었다”고 봉하마을에 눌러앉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대통령은 매일 아침 마을청소를 하며 생태마을로 가꾸기에 나섰다. 그 핵심은 마을 주민들의 주업인 벼농사를 친환경농법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친환경 벼농사의 책임이 김 대표에게 떠맡겨진 것은 오로지 그의 ‘급한 성질’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사저에서 비서관들과 회의를 했다. 그는 2008년 이른 봄날 조회시간에 “올해부터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해야 한다면 저라도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는 책에서 “사실 대통령 말고는 비서들 누구도 농촌에서 태어났거나 농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대통령더러 농사를 직접 지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도 봉하마을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논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고, 벼에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벼농사는 꿈도 꾼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결국 성질 급한 내가 먼저 자원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고 서거할 때까지 과정도 70여쪽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은 처음 형님(노건평씨) 이야기가 나올 때 설마 했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진 다음에는 사과나 해명을 해볼 계기조차 잡지 못했다. 문 밖을 나가지 않았고, 모든 바깥 활동을 중단했다. 사저에는 간간이 찾아오던 손님마저 발길이 뚝 끊기고 늘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표정도 나날이 어두워져 갔다. 매일 하던 회의도 차츰 뜸해지다가 이내 중단되었다.” “대통령은 자신이 당하는 것보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더 힘들어했다.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겠으나, 정치적·도덕적 명분을 잃었다고 스스로 책임을 물었다. 자신 때문에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적 정당성이 송두리째 비난받고 있는 상황을 더욱 견디지 못했다.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통령은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적 상징‘이라는 영광스러웠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아야 했다.” 김 대표는 “내가 미친 사람처럼 농사에 매달린 것은 대통령을 지켜내지 못한 스스로의 한풀이었다. 이것이라도 해야 그나마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대통령의 유업은 내 삶의 방향과 목표가 되었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함께했던 봉하마을에서의 15개월은 나에겐 찬란한 봄이었습니다. 대통령은 나에게 당신의 가치와 영혼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먼 길을 떠난 ‘바보 농부 노무현’은 나에게 운명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호 대표는 스스로를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굽은 소나무가 아니라 노무현을 사랑한 사람들이 언제나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싱싱한 푸름으로 가득한 상록수”라고 추천사를 썼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