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3일 오전 9시11분. ‘피고인 박근혜’를 태운 호송차가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호송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바닥만 응시한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수의 대신 지난 3월31일 구속될 때 입었던 남색 사복을 입고 있었다. 왼쪽 가슴에 수인번호를 의미하는 숫자 ‘503’이 적힌 하얀 배지만이 그가 피고인 신분임을 보여줬다.
53일 만에 방송 생중계 화면을 통해 국민들의 눈에 비친 박 전 대통령의 모습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올림머리’였다. 탄핵 뒤에도 매일 새벽 자택으로 미용사를 부를 만큼 특유의 올림머리를 고수해온 박 전 대통령은 이날도 올림머리를 하고 법정에 나왔다. 플라스틱 재질의 큰 집게핀 1개로 머리 전체를 고정하고, 나머지 머리핀 3개로 옆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했다. 애초 언론은 박 전 대통령이 홀로 올림머리를 하기 어려워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올림머리를 위해 구치소에서 영치금으로 핀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구치소의 수용자 구매물품 가격표를 보면 집게핀은 1660원, 머리핀은 390원이다. 박 전 대통령이 ‘셀프 올림머리’를 하는데 든 비용은 총 2830원인 셈이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 전 대통령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약간 수척했고, 눈은 부어 보였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그가 만성신부전증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피고인’ 신분으로 국민 앞에서 서게 된 박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긴 하루를 보냈다. 오전 8시40분 박 전 대통령은 ‘나홀로’ 호송차를 타고 별다른 신호통제를 받지 않은 채 9시11분께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했다. 대통령 경호실은 경호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으며, 경찰 역시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호송차 앞뒤로 경호만 지원했다. 재판 시작시각보다 50여분 일찍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이 열리는 4층 법정대기실에서 대기했다. 7.72대 1 경쟁률을 뚫고 방청권을 따낼 만큼 관심이 높았던 만큼 재판정은 시작 전부터 방청객들로 들어찼다. 첫 재판은 3시간가량 진행됐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엔 최순실씨 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구치소 쪽은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오후 1시 재판이 끝나자마자 점심을 먹지 않고 바로 서울구치소로 되돌아갔다. ‘피고인 박근혜’를 위한 별다른 배려는 없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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