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청와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뒤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처분해야 할 주식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지침’을 전달한 정황이 1일 법정에서 공개됐다.
최상목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2015년 말께 상황을 설명했다. 그해 10월, 공정위는 삼성이 7월 합병으로 형성 또는 강화된 주식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삼성과 청와대 요구로 처분 주식 수를 최종 500만주로 줄여줬다고 특검팀은 보고 있다. 석아무개 공정위 기업집단과 서기관이 당시 청와대로부터 외압을 받은 내용을 기록한 ‘업무 일지’를 보면, 청와대는 그해 10~11월 ‘1000만주 처분’ 통보 및 언론 공개를 늦추도록 공정위에 여러 차례 지시했다.
최 전 비서관은 이날 법정에서 “공정위에 ‘결과를 먼저 언론에 공개하지 말고, 브이아이피(대통령) 순방 이후에 하라’고 지시했느냐”는 특검팀 질문에 “그런 취지의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지만, 회사(삼성)에서 자발적으로 해소 계획을 만들어 공시하는 게 시장친화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최 전 비서관은 처분 주식 수를 두고 청와대와 공정위가 협의한 내용도 증언했다. 그해 12월21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최 전 비서관으로부터 “처분 주식 규모를 두고 공정위 내에서 갑론을박이 있다. 처분 규모가 크면(900만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처분 규모가 작으면(500만주) 특혜에 대한 비난이 나올 수 있다”는 보고를 받고 “법리해석상 두 안 모두 가능하다면 500만주가 좋겠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 전 비서관은 이후 김학현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에게 처분 주식 규모를 어떻게 할지 물었고, 김 전 부위원장이 “500만주로 하는 게 내 소신”이라고 말하자 “소신대로 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최 전 비서관은 안 전 수석이 500만주 처분에 대한 선호를 표한 뒤 하루만에 공정위의 결정을 재촉한 정황도 증언했다. 최 전 비서관은 “정재찬 당시 공정위 위원장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자 안 전 수석이 ‘왜 이렇게 결정이 늦어지냐. 위원장이 빨리 결정하라고 하라’고 해 김 전 부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특검팀은 그해 12월 말 공정위가 900만주 처분 방침을 정해놓고도 삼성의 뜻을 반영하라는 청와대의 압력으로 사흘 만에 500만주로 결정을 바꿨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최 전 비서관은 “2안(500만 주)이라고 특정해서 김 전 부위원장에게 말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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