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전 국민연공단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법원이 박근혜 정부 ‘정경유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불법 행위가 개입됐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이 비정상적이었음을 지적하고, 국민의 ‘미래재산’으로 대기업 총수 일가의 배를 불린 고위 공직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는 8일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을 움직여 국민연금이 삼성 합병에 찬성하도록 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으로 구속기소된 문형표(61)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해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혐의로 업무상 배임 혐의가 인정돼 불구속기소된 홍완선(61)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게도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2015년 6~7월 문 전 장관이 부하 직원들에게 “삼성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하고,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 대신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심의해 합병 찬성을 의결하게 한 행위 등을 모두 직권남용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연금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국민연금기금에 주주가치의 훼손이란 손해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또 홍 전 본부장에 대해선 “기금운용본부장으로서 기금 자산의 수익성과 주주가치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주식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책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의 압력 행사 배경에 ‘삼성의 청탁’ 또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 ‘범행의 동기’에 대한 판단은 판결문에 포함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재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이재용 등 삼성 대주주에게 재산상 이득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삼성 뇌물’의 대가이자 부정한 청탁의 하나로 꼽히는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찬성이 부당했다는 점이 인정되면서, 특검과 검찰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입증하는 데 다소 유리한 위치에 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남근 변호사(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이번 뇌물 사건은 ‘이재용의 청탁’과 ‘박근혜의 지시’, ‘부정한 지시 실행’ 등 세 단계로 구성됐는데, ‘국민연금의 배임적 찬성’이라는 지시 실행 결과가 인정된 만큼, 청탁과 지시를 입증하는 데 한 걸음 다가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소은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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