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바라카 (1888~1918)
1918년 6월19일, 에이스 조종사 격추되다
1차 대전의 공중전 에이스. 독일에 ‘붉은 남작’ 리히트호펜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프란체스코 바라카 백작이 있다. 적기 서른네 대를 격추. 서른네 번의 공중전에서 이겼다는 뜻. 이탈리아에서 국민영웅 대접을 받았다.
당시 공중전은 왜 인기였을까. “기사의 결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스벤 린드크비스트는 <폭격의 역사>에 썼다. 잘생긴 바라카 백작은 20세기의 기사로 제격이었다. 갈기를 휘날리는 말 그림을 비행기 옆구리에 붙이고 하늘을 누볐다. 1차 대전은 비참한 전쟁이었다. 참호에서 무력하게 죽어가던 병사와 가족들은 푸른 하늘에서 결투를 벌이는 영웅의 이야기를 나누며 억울한 마음을 달랬으리라.
전쟁 막판에 격추되었다. 1918년 6월19일의 일이었다. 며칠 후 시신을 발견. 머리에 총상이 있었다. 자결이라고도 한다. 서른 살의 젊은 나이였다.
그리스와 로마의 서사시에 따르면 고대에는 죽은 영웅을 위해 전차 경기를 열었다고 한다. 바라카의 어머니 파올리나 백작부인은 1923년 6월17일에 자동차 경기를 열었다. 승리자는 엔초 페라리. 바라카의 말 그림을 받아 자기가 만든 자동차에 붙였다. 이것이 ‘페라리’ 스포츠카의 고풍스러운 마크에 얽힌 사연이다.
김태권 만화가
위키피디아
일러스트 오금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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