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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국은 내게 스트레스”…‘헬조선’ 청년은 또다시 난민이 됐다

등록 2017-07-08 09:40수정 2020-07-06 18:20

[토요판] 뉴스분석 왜?
국외로 가는 병역거부 성소수자
2009년·2013년에 이어 또다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국외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1986년생 동성애자이자 병역거부자 서민영(가명)의 이야기다. 국제법상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소속, 정치적 의견 등을 사유로 박해를 받을 것을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나거나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4년 전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와 프랑스의 한국인 난민 김인수(가명·38)·이예다(27)의 사연을 보도한 적이 있다. 2013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난민재심재판소(RRT)는 김인수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이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있으며, 양심과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하는 과정에서 고초를 겪었다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2013년 6월 프랑스 난민·무국적자보호사무국(OFPRA)은 아무 이유 없이 작은 벌레도 죽일 수 없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예다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였다. 앞서 2009년 당시 28살이었던 병역거부 성소수자 김아무개는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IRB)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예다의 사연을 보도하자, 그로부터 조언을 얻고 싶다는 청년들의 이메일이 이어졌다. 정치운동 및 인권단체 등에서 활동한 서민영도 그들 중 한명이었다. 2013년 12월23일, 27살 민영은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입영 대상자가 병무청으로부터 국외여행을 허가받을 수 있는 나이는 27살까지다. 이듬해 프랑스 당국에 난민 신청을 했다. 시리아 내전 등으로 인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6만명가량이 프랑스로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한 해였다. <한겨레>가 확인한 프랑스 난민·무국적자보호사무국 서류를 보면 민영은 2014년 3월 난민 신청을 했으며, 2년8개월이 지난 2016년 11월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한국 성소수자는 왜 이렇게 비참한가?

지난 4월 민영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연락을 했다. 10여일이 지나 정신적·신체적 어려움으로 인해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3주 뒤 그는 마음을 바꾸었다. 다만,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확인하기 어렵도록 이름을 가려주길 청했다. 그는 성별 구분이 모호한 ‘민영’이라는 이름을 가명으로 택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나?

“성소수자 군인이 동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성소수자 친구들이 엄청난 슬픔을 표현했다. ‘나도 잡아가라’ ‘이제부터 범죄자가 됐다’는 글들을 접하면서 굉장히 착잡하고 슬펐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는 왜 이렇게 비참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한국을 떠나보니 ‘동성애 혐오’가 얼마나 심한 사회인지 실감한다. 프랑스에도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차별’ 문제에 훨씬 더 민감하다.”

-한국을 떠난 사람이 왜 이러한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지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다.

“내가 한국 사회에서 겪은 문제를 ‘환기’시키고 싶다. 많은 분들이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군인이 동성 간 성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처벌을 받는데, 군대에서 특별히 이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는 명백한 동성애자 처벌법이다. 군대에 무조건 가라고 해놓고, 거기서 동성애 행위를 하면 처벌한다니. 군대에서 겪게 될 동성애자 차별 역시 병역거부 동기 중 하나였다.”

지난 5월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은 ‘군형법 92조의 6’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 대위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했다. 군형법 92조의 6은 ‘군인이나 군무원, 사관생도 중에서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로 합의했다 하더라도 동성 간 성행위를 했다면 모두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10년간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사회는 이 조항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며 수차례 폐지 권고를 했지만,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7월5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 조항이 폐지되길 바라는 인권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창살 안에 갇힌 성소수자 군인을 상징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7월5일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처벌하는 ‘군형법 92조의 6’ 조항이 폐지되길 바라는 인권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창살 안에 갇힌 성소수자 군인을 상징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는 올해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후보들에게 군형법 92조의 6 폐지 의견을 물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 쪽은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있는 상태이므로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2002년 6 대 2, 2011년 5 대 4, 2016년 5 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최근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군형법 92조의 6을 폐지하는 내용의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통과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학교 폭력으로 돌아온 ‘다름’

민영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또래 남자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축구보단 글짓기가 좋았고 여자 가수들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언젠가부터 멋진 남자아이를 보고 두근거렸다. 그의 ‘다름’은 곧 심한 놀림감이 됐다. 남자 중학교에 입학한 뒤, 같은 반 학생으로부터 심한 폭행과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한다는 군대에 대한 두려움도 시작됐다.

병역거부 성소수자 20대

프랑스에서 난민지위 인정

학창시절 학교 폭력 피해

군대식 훈련 거부감 커져

“동성과 성관계한 군인 처벌

‘동성애 혐오 사회’ 실감했다”

종교·신념 따른 병역거부자

감옥행 말고 대안 없어

-어린 시절, 남과 다르다는 데 대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남성성과 멀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엄연히 ‘폭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대안이 없나 고민했다. 고3 때인 2004년 언론 보도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 개념을 발견했는데, 불교도이자 평화주의 사유로 군대에 갈 수 없다는 분과 내 고민이 다르지 않았다.”

-난민 신청서를 보면, 정신병원에도 입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셨던 것 같다. 만약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그 경중에 따라 군대가 면제되니 병역거부를 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셨다. 나도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던 상황이었던지라 못 이기는 척 병원에 갔다.”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하지 않으면, 병역법 제88조 1항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닌 한국인이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양심을 꺾고 입대를 하거나 통상 1년6개월의 실형(재징집을 면할 수 있는 최저형)을 사는 것이다. 다만, 2015년 이후 재판에 넘겨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1심) 법원의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엔 항소심(2심) 법원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군대에 가지 않을 ‘정당한 사유’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6월25일 대법원은 또다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1년6개월의 징역형을 확정했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7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근거 조항인 병역법 제88조 1항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으나, 아직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감옥이 두려웠다

병무청이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7년부터 2016년 10월말까지 모두 4943명이 종교·신념 등의 사유로 입영과 집총을 거부해 징역형을 살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99%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다. 여호와의 증인 누리집을 보면, 올해 4월 기준 401명이 군대를 가지 않아 감옥에 갇혀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정치적 중립을 원칙으로 하지만, 국가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법을 존중하고 세금을 내는 이들은 군대 대신 감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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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9월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 2008년 12월 국민적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계획을 번복해 버렸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마음대로 체포하거나 억류하는 ‘자의적 구금’이 발생한 인권침해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59개국 가운데 몽골·러시아·그리스 등 약 20개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 두고 있다. 한때 병역거부자를 13년씩이나 가두던 대만은 2000년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대만은 2018년부터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 전환 계획을 밝혔다.

-2007년 대체복무제가 도입됐다면, 난민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군 입대 외에 다른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대체복무제 도입 자체를 뒤집긴 힘들 것이라 생각해 계속 입대를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기대마저 없어졌지만.”

-난민 신청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현실적으로 감옥에 가는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감옥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거기도 위계질서가 있고 인권침해가 있으니까. 그러다 이예다씨 사례를 보고 난민으로 사는 게 가능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한국을 떠날 땐 부채감이 있었다. 이렇게 내 한 몸 빠져도 되는 걸까. 다행히 소속 단체의 거의 모든 회원들이 (내 선택에 공감하는) ‘감정이입’을 해주었다.”

-3년 가까이 난민신청자 신분으로 사는 것은 어땠나?

“여러모로 운도 좋았고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회에 적응하는 건 굉장히 힘들었다. 현실적으로 금전적인 문제도 크다. 난민 신청을 하고 9개월이 지나면 일을 할 수 있긴 한데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제한적이다.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불안정한 신분이므로 사용자들이 채용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분야에도 ‘군기 잡는 문화’가 있다더라. 병역거부를 하면 출소 이후 직업을 얻는 데 제약이 많으니 학원 강사일을 할까 생각했다. 여기서도 생존을 위한 일을 준비하고 있지만, 억눌렀던 코미디언에 대한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은 나를 억압하는 곳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체복무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이었다. 여당 의원들의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병역법·예비군법 개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청년이 난민이 됐다는 소식은 또 들려올지 모른다. 2015년초 결성된 반군사주의 네트워크인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서울지부장 안악희씨는 일주일에 한번꼴로 난민 신청을 고민하는 이들의 연락을 받는다. 20대 초반에 국외로 나가 난민 신청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와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다.

2013년 12월 프랑스로 향한 1986년생 서민영(가명)은 지난해 11월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파리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 서민영의 뒷모습. 서민영 제공
2013년 12월 프랑스로 향한 1986년생 서민영(가명)은 지난해 11월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파리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는 서민영의 뒷모습. 서민영 제공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나?

“사실 프랑스어가 어렵다. 모국어 쓰면서 살고 싶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데…. 지난해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성과를 얻었듯 사회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예전에는 페미니즘 자체를 억눌렀지만, 최근엔 여성들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나. 동성애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동성애 차별이 완화되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까?

“부모님은 프랑스에서 행복하지 않을 것 같고, 앞길이 보이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와 벌 받고 함께 살자고 하신다. 한국은 내게, 스트레스였다. 다름을 용인하지 않고 억압하는 곳이었다. 프랑스 사회가 본연의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모르겠다. 난민으로 살아가기로 한 건 후회하지 않는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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