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조용하고 밋밋해서 좋아요… ‘저자극’ 콘텐츠 찾는 청년들

등록 2017-07-30 15:58수정 2017-07-30 19:39

초콜릿 자르는 소리·물감 섞는 장면 등
ASMR·무자극 영상 유튜브 채널 인기
“바짝 긴장했던 몸과 마음 풀리는 기분”
대학생 박해든나라(25)씨는 자기 전 유튜브에 접속해 에이에스엠아르(ASMR: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감각쾌락반응) 동영상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에이에스엠아르’(ASMR)란 속삭이듯 작고 정밀한 소리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을 뜻한다. 영상 속에서 방송 진행자는 알로에를 자르고 연필을 깎는다. 그 소리는 세밀하게 녹음돼 흘러나온다. 박씨는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때 처음 접했는데, 듣고 있으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줘서 요즘은 잠잘 때 말고도 일상생활 중에도 틈틈이 찾아 듣는다”고 말했다.

‘피로사회’라는 말이 자연스러워진 요즘, 20·30세대 사이에서 뇌를 쉬게 하는 조용하고 밋밋한 ‘저자극’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에서 에이에스엠아르 콘텐츠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채널 ‘데이나 에이에스엠아르’(Dana ASMR), ‘미니유 에이에스엠아르’(Miniyu ASMR)의 구독자는 각각 46만명, 37만명에 달한다. 치킨이나 연어샐러드 등 음식을 섭취하는 소리에 집중하는 ‘이팅 사운드’(eating sound)를 방송하기도 하고, 같은 단어만 반복해 작은 소리로 속삭이기도 한다. 구독자들은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포근함과 편안함을 준다”고 말한다. 에이에스엠아르 콘텐츠를 제작해온 ‘미니유’의 유민정(29)씨는 “2014년부터 구독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토닥여주는 느낌’이 구독자들에게 전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년기 소꿉장난을 연상케 하는 놀이 영상도 인기를 끌고 있다. 팔로어 수가 71만명에 달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아네트라베츠키’(annettelabedzki)에 올라와 있는 영상에는 여러 색의 물감과 팔레트 나이프만 등장한다. 진행자는 영상에 손만 등장시킨 채 말없이 물감을 이리저리 섞는다. 구독자들은 물감이 오묘하게 섞이는 과정을 가만히 감상한다. 또 다른 인스타그램 계정 ‘샌드 타기우스’(sand.tagious)에는 찰흙과 비슷한 모래장난감인 ‘키네틱샌드’ 덩어리를 뭉치고 썰고, 퍼내며 갖가지 모양을 만드는 영상들이 업로드된다. 취업준비생 조선우(26)씨는 이런 영상을 찾는 가장 큰 이유로 ‘이완감’을 꼽았다. 그는 “무심하게 물감을 섞는 모습을 보다 보면 온종일 바짝 긴장하고 있던 몸과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에는 아예 무자극 콘텐츠만 올라오는 페이지도 등장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무자극 콘텐츠 연구소’는 살짝 열어둔 버스 창문, 퇴근 후 마시는 물 한잔 등 피사체로 주목받지 못한 일상의 사소한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올린다. 개설된 지 한 달 남짓 지났지만, 1만7000여명이 구독하는 인기페이지가 됐다. 운영자는 <한겨레>와 한 페이스북 메시지 인터뷰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자극적인 콘텐츠들 사이에서 자극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며 “피로감을 주는 부정적인 자극에 지친 사람들에게 특색도 없고 자랑거리도 안 되는 사소한 콘텐츠가 편안한 매력으로 다가간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자극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경향은 해외에서도 관찰된다. 노르웨이에서는 몇 해 전부터 기차 창밖 풍경, 실을 뽑아 뜨개질하는 장면,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는 모습 등 일상적이고 편안한 내용의 영상을 특별한 편집 없이 있는 그대로 방영하는 ‘슬로TV’가 인기를 끌었다. 이런 ‘밋밋한’ 영상들은 수 시간~수백 시간 동안 방영되는데, 황금시간대 시청률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시청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알려졌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불안스트레스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2010년대에 들어서 20·30세대의 불안이나 스트레스 수준이 전체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스트레스가 클 때는 의식이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흘러가기 쉽다. 단조롭고 반복적인 자극들이 의식을 현재에 머물게 해 불안을 막고 이완을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한솔 기자, 조진영 교육연수생 so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