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애씨
”아무리 하찮은 자리라도 뺏을 순 없어”
서울 강남구 대치2동 은마아파트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김정애(54)씨는 지난 1년을 온통 ‘송사’와 ‘청원’으로 보냈다.
1995년 23년 간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난 뒤 김씨는 한층 홀가분해진 시간을 교회 봉사와 동네 일에 쏟았다. 5년 동안 반장을 맡아보다가 2002년 3월엔 통장 일을 보게 됐다. 김씨는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소상히 알게 되면서 이웃도 많이 사귀고 보람도 느꼈다”고 말했다.
문제가 발생한 건 2004년 7월 은마아파트 정기입주자대표회의를 할 때였다. 당시 회의 때 일부 주민들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이아무개씨의 자격을 문제 삼자, 입주자대표회의는 이후 임시총회를 소집해 김씨를 포함한 주민 3명이 집단 난동을 부려 회의진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앞으로 5년 간 은마아파트에서 모든 공무를 맡아볼 수 없도록 결정한 것이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이 내용을 아파트 게시판과 관리비부과내역서에 실어 공개했다.
억울함과 분노에 휩싸여 김씨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서면으로 공개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입주자대표회의는 되레 김씨가 통장으로 있는 아파트 동 모든 주민들에게 김씨가 잘못됐다는 내용의 편지를 발송하는 한편, 대치2동 동장에게도 김씨의 통장 해촉을 요청하는 민원서를 보냈다. 숨 가쁜 공방이 오가던 중 김씨는 2004년 9월 동사무소로부터 통장 해촉을 알리는 서신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법 말고는 의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즉시 검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고소하는 한편 서울시·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을 찾아 부당한 통장 해촉을 바로잡아달라고 청원서를 냈다.
이듬해 7월 검찰은 회장 이아무개씨가 김씨의 명예를 훼손한 점을 인정하며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내렸다. 또한 지난달엔 이씨가 김씨를 상대로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낸 맞소송에서도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나자 김씨는 “부당하게 통장 직을 잃은 것이 인정된 만큼 다시 통장에 복귀시켜 달라”고 대치2동 동장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복귀시켜 주고 싶어도 일부 주민들이 반발해 곤란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씨는 “통장이 뭐 대단하다고 이렇게 힘겹게 싸우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불합리하게 흘러가는 데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글 이유주현, 사진 김정효 기자 edigna@hani.co.kr
글 이유주현, 사진 김정효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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