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공판일인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노동당 당원들이 부회장의 처벌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재판부의 선택을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재판부가 유독 법정형이 높은 혐의에 대해서는 모호한 논리를 동원했고, 결과적으로 이 부회장 형량의 ‘하한선’이 크게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5년형이 선고됐지만, 재판부의 재량권까지 행사되면 ‘하한선’은 집행유예도 가능한 수준이다.
‘하한선’이 낮아진 이유는 재산국외도피 혐의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때문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5가지 혐의 중 가장 형량이 무거운 재산국외도피죄는 범죄 금액이 50억원 이상이면 최소 10년형 이상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지난 25일 특검이 기소한 79억원의 재산국외도피 금액 중 최순실씨 소유 독일 회사 코어스포츠 용역대금으로 건너간 36억원만 재산국외도피액으로 인정했다. 반면 삼성이 최순실씨 쪽에 준 말 구입 비용 36억원을 뇌물로 인정하면서도, 재산국외도피 혐의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재산국외도피액은 50억원 아래로 내려갔고, 법정 최하한형은 10년에서 5년으로 줄었다.
말 구입 비용을 도피액으로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의 논리는, 삼성이 말을 사들일 당시엔 최씨 쪽에 증여할 의사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가 정유라씨에 대한 지원임을 알고 말 구입비를 지원한 것은 뇌물이라고 인정해놓고도, 정작 말을 살 당시엔 최씨 쪽에 증여할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최씨에게 말 소유권이 이전된 시기가 돈을 보낸 이후라는 점을 들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이 사건 용역계약이 체결된 2015년 8월26일에는 (삼성이) 최순실에게 마필 등의 소유권을 이전할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한 뒤 “최씨가 그해 11월께 박상진, 황성수에게 화를 내며 마필의 소유권을 이전하여줄 것을 요구한 것이 마필을 증여하게 된 계기였는데, 이는 예금거래신고 이후였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처음엔 말을 빌려주려고 샀는데, 최씨가 화를 내자 말을 줬다는 삼성의 논리를 받아들인 셈이다.
이 탓에 법조계 일부에서는 형량 등을 미리 정해놓고, 그 결론에 법 이론과 증거를 짜맞춘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여론을 고려해 징역 5년을 선고하긴 했지만, 판사의 재량으로 2심에서 집행유예가 가능한 2년6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향후 항소심에서 특검과 삼성 쪽은 이 부분을 두고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