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 당시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이 2013년 8월 국회 국정조사에 참석했다. 김경호기자 jijae@hani.co.kr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주도한 ‘사이버 여론조작’ 사건에는 여러 명의 주연이 등장한다. 2009년부터 3년 넘게 진행된 국정원의 여론조작도 충격적이었지만 4년 이상 진행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간은 여러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2013년 4월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의 수사 개입을 폭로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2014년 7월 재·보궐 선거(광주 광산을)에서 당선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됐다. 지난해 5월 20대 총선에서도 재선에 성공, 현재 국민의당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용판 전 청장은 수사 은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2015년 1월 대법원에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총선에서 대구 달서을에서 출마를 선언했지만, 경선에서 탈락한 뒤 “부정선거”를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에 권은희 의원이 있었다면 검찰에는 윤석열 특별수사팀장과 그를 지원했던 채동욱 검찰총장이 있었다. 2013년 10월 당시 윤 팀장은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수사 축소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윤 팀장은 되레 서울중앙지검장의 보고·결재 없이 국정원 직원들의 체포·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는 이유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고, 박근혜 정부 내내 인사 불이익에 시달리며 지방을 전전했다. 그는 정권 교체 뒤 지난 5월19일 ‘기수·인사 관행’을 뛰어넘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수사 초기 수사팀을 독려하며 정권의 방패막을 자처했던 채 총장은 ‘혼외자 논란’에 이은 법무부 장관의 감찰지시 등으로 검찰을 떠났고, 최근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반면 당시 수사 책임자들은 검찰을 떠났다. 2013년 12월부터 수사를 지휘한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2015년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임명 배경으로는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등 정권에 민감한 사건을 ‘권력 맞춤형’으로 수사한 전력이 거론됐다. 얄궂게도 그는 2016년 9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터져 나온 뒤 임명권자인 박 전 대통령의 수사를 지휘해야 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 당선 뒤 그는 사의를 표명하며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검찰을 떠났다. 김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기 전 수사를 맡았던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윤 지검장의 수사 개입 폭로 뒤 사직했고 현재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다.
윤석열 당시 검찰 특별수사팀장이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 참석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4년 9월 원 전 원장의 1심에서 “정치개입이지만 대선개입은 아니다”고 판단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재판장 이범균 부장판사는 박근혜 정부 3년 차인 2015년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정치·대선 개입을 모두 인정한 2심의 핵심 증거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13대0’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재판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 끝난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3월부터 사법 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을 탄압하려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비판 속에서 법관으로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다.
한편 국정원 여론조작의 ‘최대 수혜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현재는 엇갈렸다. 이 전 대통령은 2015년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을 내는 등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평탄한 퇴임 이후의 삶을 보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의 덕을 봤지만, 지난 3월10일 탄핵된 뒤 현재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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