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고 김훈 중위 아버지 김척씨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옥에서 고 김훈 중위 자료를 들어보이며 군 수사의 부실함을 설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김훈 중위 순직 인정 됐다고 사망 원인이 밝혀진 게 아닙니다. 재조사를 해야합니다. 군 의문사 조사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김훈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국방부가 19년 만에 고 김훈 중위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한 31일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74·육사21기)씨의 얼굴에서는 기쁨보다는 착잡함이 먼저 읽혔다. 순직 인정은 반갑지만 아들이 자살한게 아니란 것을 군이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가방이 들렸다. 20년째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이다. 아들의 사건을 설명하는 각종 자료다. 김씨의 시간은 아들이 사망한 1998년 2월24일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3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김척씨가 기억하는 김훈 중위(사망 당시 25살·육사 52기)는 성실하고 강한 아들이었다. 김 중위는 친구들 사이에서 ‘바른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모범생이었다. 조국을 위해 만 36년간 군복을 입고 월남전에도 3년이나 참전한 아버지를 아들은 자랑스러워했다. 김훈 중위도 직업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김 중위는 1998년 2월24일 정오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지하벙커에서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최초 현장감식 두 시간 전에 이미 자살보고가 이뤄지는 등 부실한 초동 수사가 벌어졌다. 군은 김 중위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자살한 것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2006년 김 중위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초동수사 부실로 인한 유족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했다. 하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규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도 2012년 8월 벙커 내 격투흔적이 있고, 김 중위 관자놀이에서 총구에 눌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자살로 결론짓기 어려우니 김 중위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국방부는 김 중위를 순직 처리하지 않았다.
김씨는 국방부가 대법원 판결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사인을 ‘자살’로 결론짓고 이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활용했다고 분노했다. “지난 19년간 국회 국정감사, 대법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이 사실상 ‘군의 자살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는데도 끝까지 받아들지 않았어요.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한 것입니다.”
김씨는 우리나라가 군대 내 사망, 자살은 물론 군 의문사의 순직처리에 소극적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나라든 군 내에서 죽은 경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모두 국립묘지 또는 군인묘지에 안장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김씨는 강한 군대는 국민의 신뢰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정의롭지 못한 군대는 강도떼나 다름없는데 그런 군대를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김훈 중위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진상 규명되지 않은 군인 사망사건들, 현재 군에 복무하고 앞으로 입대할 대한민국 젊은이와 부모들 모두의 문제입니다.”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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