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도 고위공무원이나 정당추천 정치인
사서들 “낙하산에 회의” 사기 바닥으로
‘육군사관학교 나오면 육군참모총장이 될 수 있지만, 문헌정보학(또는 도서관학) 전공자는 국립중앙도서관장이 될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 등 주요 도서관 관장을 문헌정보학 전공과 관련이 없는 관료와 정치인이 맡는 관례가 이어져, 이용자 중심의 도서관 문화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지식의 보고이며 전반적인 도서관 정책 수립이나 지원을 수행하는 국립 중앙도서관장에는 거의 예외 없이 문헌정보학 전공자나 나라를 대표하는 학자를 기용하고 있다.
18일 도서관 관련 단체와 학계에 따르면,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 관장에 두 도서관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문헌정보학 전공자가 선임된 적이 없다. 국립 박물관이나 미술관, 극장 등의 운영을 전문가들이 책임지는 추세 속에서 유독 주요 도서관만이 유독 ‘비전공자의 식민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 15일로 개관 60돌을 맞은 국립도서관은 문화관광부 1급 관료가 관장직을 맡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교육부 산하이던 1990년 이전에는 교육부 관료가 역대 관장을 맡아 왔다. 사서직 공무원의 관장 임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서직은 9급부터 시작해 4급에서 그치기 때문에 전공자들이 관장에 오른 적은 없었다. 사서직 출신이 간혹 4급 이상의 직급에 오르기도 하지만, 이제까지의 관례로 볼 때 사서직이 국립중앙도서관장을 노리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수장 자리가 행정직 몫이라면, 1952년 국회도서실로 시작한 국회도서관 관장은 더욱 도서관과는 큰 관계가 없는 정치인들의 몫이다. 국회는 관행적으로 사무총장에 여당 추천자를 선임하는 대신 국회도서관장에는 제1야당 추천자를 앉혀 왔다. 통상 4년을 재직하는 국회도서관장에는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부대변인 출신이 임명됐다. 그동안도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다음 선거를 노리는 정객들 차지였다.
학계 등에서는 대표적인 도서관들이 이처럼 전공자들에게 수장 자리를 내주지 않은 것은 도서관 문화 발전에 도움되지 않을뿐더러 전공자들의 사기도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지난해 6월 한국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 등은 “17대 국회만큼은 국회도서관장을 꼭 전문가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부 국회의원도 이런 움직임에 가세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현재 40여개 대학에서 해마다 2천여명의 사서 자격 소지자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다. 한 사립대 문헌정보학과 졸업반 학생은 “행정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도서관 관장에 임명되는 것을 보면 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관장이 못 되는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한 도서관의 사서는 “그동안 행정가 위주로 도서관장을 임명하다 보니 실무적 면에서 사서들이 느끼는 애로가 많다”며 “기관의 본질에 맞게, 전문성 갖춘 사서를 양성해 관장까지 키울 수 있는 체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서평론가 이권우씨는 “평생학습 시대에 도서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만큼 적어도 대표 도서관들이라면 도서관 운영 철학을 지닌 이들의 광범위한 지원을 받아 관장을 뽑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본영 이정애 기자 ebon@hani.co.kr
이본영 이정애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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