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회원 수 80여만명의 남초 인터넷 카페에 한 설문조사가 만들어졌습니다. 제목은 ‘국산 유출 야동 봐도 된다 vs 보면 안 된다’. 906명(지난 7일 기준)이 참여한 이 설문조사에서 480명이 ‘봐도 된다’고 답했습니다. ‘보면 안 된다’(426표)는 답변을 훌쩍 앞섰습니다.
회원들은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대부분의 야동은 감시할 사람 없는 방 안에서 혼자 보는 게 대부분일 텐데 당사자 개인에겐 불행이지만 누가 얼마나 본다 한들 남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인 듯.” “보고 그냥 거기서 끝이면 상관없지 않나요? 그걸 누군지 찾고 신상 털고 하는 놈들이 나쁜 것 아닌가요?”
정말 그럴까요? 안녕하세요. 지난 6일부터 ‘몰카, 디지털성범죄다’ 기획 기사를 취재·보도한 사회부 24시팀의 고한솔입니다. <한겨레>는 세 차례에 걸친 보도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영원한 고통 속에 살아야 하지만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치는 현실을 돌아봤습니다.
사실, 설문조사 결과가 놀랍진 않았습니다. 취재하면서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거든요. 성관계·화장실 영상 등을 촬영하고 이를 유포한 사람, 그리고 이 촬영물을 다시 업로드해 돈을 버는 사람이 ‘범죄자’란 인식에는 다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단순 시청자도 가해자의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부가 난리 쳐서 성인물 못 보고 성매매 못 하게 한 결과 아닌가. 국산 야동까지 못 보게 하면 남자 성욕을 풀 만한 게 우리나라에 뭐가 남나?”라고 댓글은 되묻기도 합니다.
시민단체들은 동의 없이 촬영·유포된 결과물을 시청하고 댓글로 호응하는 행위 또한 ‘가해 행위’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그 행위 역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 행위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시청 강간’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나옵니다. 여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게시글을 클릭해 한 번 시청할 때마다, 피해자에겐 매번 강간이 일어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하예나 디지털성범죄아웃(DSO) 대표는 “범죄물을 소비하는 것도 성폭력의 일부다. 금전을 이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셈”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의 클릭과 동시에 피해는 발생합니다. 촬영물에 피해자의 얼굴·이름이 드러나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유출되고 그의 가족 등 지인에게도 피해가 확산됩니다. 그 과정에서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는 ‘누군가 내 영상을 봤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소라넷 부류의 성인물 사이트 등 유통시장 자체를 완벽히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중국·북한처럼 사이트 접속을 완벽히 차단하지 않는 한 단속에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이해영 전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두두아이티 이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조치를 취해 성인사이트를 접속 차단한다고 해도 실효성은 떨어진다. 고속도로를 막아도 갓길 등 우회로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결국 시청 행위 자체를 줄여나가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청 행위가 줄면, 영리 추구·협박의 목적으로 해당 영상물을 올리는 사람도 줄 것입니다.
모니터 너머에 사람이 있습니다. ‘국산 야동’, ‘유출’, ‘일반인’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그 영상은 ‘음란물’이 아니라 ‘범죄물’입니다. <한겨레>와 서면 인터뷰에 응한 성관계 영상 유출 피해자 ㄱ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피해자가 세상에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다시 그대로 전합니다.
“야동은 그냥 일본 에이브이(AV) 배우들이 찍은 포르노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주인공인 영상이 ‘야동’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소비되고 있었어요. 당시 저는 그냥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한 여성이었을 뿐,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어서 만들어낸 상황도 아니고 누가 보게 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제발 보지 말라고, 제발 피해물을 보지 말아 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영상은 야동이 아니고, 그 영상의 여성은 포르노 배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한솔 사회에디터석 24시팀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