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은의 조카 덕후감] 10. '첫 수입'이 준 것들
‘시비에스 십만원!’ 사랑하는 조카 남대현 인생 6년 만에 첫 수입이다. 지난 회 소개한, 조카와 <시비에스>(CBS)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받은 출연료다. 인원과 관계없이 회당 십만원이라고 해서 모두 조카한테 양보했다. 올케가 더 좋아했다. 돈 때문에? 아니!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또 하나의 시작을 연 것에 감격한 듯했다. 올케는 대현을 데리고 은행에 가서 첫 통장을 만들었다. “언니, 통장에 대현이 이름이 있으니 너무 신기해요.”
나도 그랬다. 생각해 보면 조카의 첫 순간을 함께한 일이 없다. 지난해 같이 간 한의원에서 처음으로 성장 관련 검사를 하는 조카를 지켜본 정도일까? 아무리 예뻐도 내 아이가 아니니, 세상의 고모, 이모, 삼촌들이 조카의 시작을 열어 줄 일은 별로 없다. 첫 걸음마를 딛는 모습도, 말을 시작하는 순간도 내 몫은 아니다. “언니 대현이 이랬어요.” “대현이 이것도 해요.” 늘 올케의 제보가 먼저였다. ‘조카덕후감’ 덕분에 조카한테 새로운 시작을 선물해주고, 그 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곧 학교도 갈 테고, 여자친구도 생길 테고, 사춘기도 올 것이고…. 그 모든 처음을 지켜볼 수 있을까.’ 앙증맞은 통장을 보고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이게 바로 부모의 마음일 테지’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불현듯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나의 첫 순간을 경험하면서 이런 기분이었을까. 태어나 울고, 웃고, 학교에 가고, 취업하고 그 모든 처음을 지켜보면서 ‘이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감격했겠지.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연히 좋아하고, 당연히 기뻐하고, 당연히 슬퍼했을 테니까. 그런데 조카가 크는 걸 보다 보니 알 것 같다. 아이의 첫 경험은 그게 무엇이든 엄마들한테는 모두 ‘감동’이라는 것을. 단순히 기쁘고 슬프고의 감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조카를 통해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다면 과장일까.
여자들은 아기를 낳고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데, 솔로들은 조카가 크는 걸 보면서 엄마를 경험하게 되나 보다. 엄마들은 비웃겠지만, 조카가 태어나고 유독 아이들 뉴스에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유치원에서 일어나는 나쁜 사건들을 접할 때면 올케한테 전화부터 하게 된다. “유치원에서 이상한 게 느껴지면 바로 전화를 하라”고 신신당부하게 된다. “대현아, 선생님이 친구들 ‘아야’ 하면 고모한테 바로 얘기해”라며 조카를 붙잡고 세뇌한다. 학대당하고, 어려운 형편에 내버려지고… 그 많은 아이가 모두 대현이 같아서 마음이 오랫동안 아프다.
휴가차 내려온 제주도의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조카 이야기를 쓰다 보니 여느 회보다 좀 감정적이 됐다. 어쨌든, 조카한테 더 많은 시작을 선물해주고 싶다. 뭐가 남았을까. 제주도 첫 여행? 아니면 첫 카페 경험? 뭐가 됐든 분명 감동일 테지.
북한산 장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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