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청부살인업자에게 돈을 주고 사업가 허아무개(당시 65실)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신아무개(40)씨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사진은 오토바이를 탄 청부살인범 일당이 권총으로 허씨를 죽인 뒤 도주하는 폐쇄회로(CC) 티브이 (TV)영상 화면 갈무리.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2014년 발생한 ‘필리핀 한국인 관광객 청부살인 사건’의 한국인 의뢰인이 3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 청부 살인업자에게 돈을 주고 사업가 허아무개(당시 65살)씨를 살해하도록 한 혐의(살인교사)로 신아무개(40)씨를 구속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 설명을 종합하면, 신씨와 허씨의 인연은 2012년 9월께 시작됐다. 신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허씨에게 카지노 사업비 명목으로 5억원을 빌렸다. 하지만 사업비를 1년 만에 도박으로 탕진하면서 빌린 돈을 못 갚게 되자 신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허씨를 살해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는 2014년 2월10일 필리핀 청부살인업자인 ㅇ씨에게 30만 페소(한화 약 750만원)를 주고 강도로 위장해 허씨를 죽여달라고 의뢰했다. 신씨의 부탁을 받은 ㅇ씨는 암살자 ㄹ씨와 오토바이 운전사 ㅈ씨를 고용했다.
같은 달 18일 신씨는 살인을 위해 허씨를 필리핀으로 초청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등 환심을 샀다. 같은 날 오후 7시45분(현지시각)께 허씨는 필리핀 앙헬레스의 한 호텔 인근 도로에서 일행 3명과 함께 있다가 오토바이를 탄 괴한에게 총격을 받고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신씨는 사건 한 달 전인 1월에도 허씨를 살해하려고 했다가 현지 살인청부업자의 미숙함 때문에 실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허씨가 사망하기 전날에도 살해 계획을 세웠지만, 현지 암살자가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해 실패했다.
경찰은 수사 초기 때부터 신씨가 살인을 청부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신씨가 허씨에게 5억원대 빚을 진 점, 피해자를 갑작스럽게 초청해 인적이 드문 도로에 나오라고 한 점 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 경찰이 신씨 일당을 검거하지 못했고, 결정적인 증거도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경찰은 국제범죄수사대 소속 경찰관을 4차례 현지로 보내 출장조사를 벌였다. 필리핀의 한인 사건 전담 경찰관인 ‘코리안데스크’도 현지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탐문 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확보한 신씨의 통역사 겸 운전기사인 필리핀인 ㅂ씨와 총기대여업자 ㅁ씨의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운전기사의 자백은 신씨의 범행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운전기사는 신씨를 통역했다는 사실을 비롯해 총기 대여 날짜와 ‘총을 빌릴 때 신씨가 사람을 살해하려는 걸 알고 있었다’라고 하면서 사진도 지목했다”고 밝혔다. 이어 “본인(운전기사)도 4년 동안 잠도 못 자고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국 경찰이 현지에서 계속 수사 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이번 기회에 자백하고 처벌 받자는 심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9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경찰이 ㅂ씨와 ㅁ씨의 진술서와 환전내역 등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범행을 자백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 살인의 정범이 검거되지 않았지만 여러 증거를 충실히 수집하고 입증해 교사범을 먼저 구속할 수 있었다”면서 “향후 해외 청부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한국인 교사범부터 처벌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