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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물대포 이틀전 뿌려진 ‘백남기 밀’로 차린 추석상

등록 2017-09-30 10:24수정 2017-10-01 10:30

[토요판] 특집
백남기 농민이 남긴 ‘마지막 밀’
‘백남기 우리밀’로 차린 간소한 차례상(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앞에서 그의 후배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우리밀’로 차린 간소한 차례상(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앞에서 그의 후배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6년 6월13일 <한겨레>는 고 백남기 농민의 3000여평 밀밭 수확 현장에 함께했다. 그가 경찰 물대포를 맞기 이틀 전 파종한 밀이 1.3t의 알곡을 이 땅에 남겼다. 밀 수확 뒤 4개월이 채 못 돼 그는 세상을 떠났고, 후배들은 그 밀로 ‘백남기 밀’ 보존사업을 시작했다. 부춘마을(전남 보성군) 11개 농가가 동참해 올해 19t을 얻었다. 고인이 이 땅에 남긴 마지막 밀이 두 번째 소출을 내며 그의 1주기(9월25일)와 추석(10월4일)을 맞았다. 아내 박경숙씨가 그 밀로 음식을 만들어 소박한 차례상을 차렸다.

물대포에 쓰러지기 이틀 전 파종한 밀
백남기 7개월째 사경 헤매던 작년 6월
아내가 후배들의 도움 받아 1.3t 수확
돌볼 사람 없이 홀로 자라 야위고 앙상

그가 남긴 밀로 만든 음식들이 그의 차례상 위에 놓였다.

“형님이 살리고자 하신 우리밀을 가지고 간단한 추석상이나마 올립니다.”

9월28일 오후 형님의 방에서 동생 문경식(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말했다. 2016년 추석(9월15일) 열흘 뒤 형님은 숨을 멈췄고, 형님의 1주기 열흘째 되는 날(10월4일) 2017년 추석이 돌아왔다. 그의 아내가 만든 음식을 그의 사진 앞에 두고 동생들이 무릎을 꿇었다. 머리 숙여 절하는 동생들 앞에서 형님 백남기가 미소 지었다.

남편이 7개월째 사경을 헤매던 지난해 6월13일 박경숙씨가 남편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마지막 밀을 수확했다. 수확 하루 전 박경숙씨가 밀밭에서 밀을 살펴보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편이 7개월째 사경을 헤매던 지난해 6월13일 박경숙씨가 남편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마지막 밀을 수확했다. 수확 하루 전 박경숙씨가 밀밭에서 밀을 살펴보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의 야윈 밀을 되살려

전날 ㈜우리밀식품(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산업단지) 도정실에서 지게차가 시동을 걸었다. 800㎏짜리 대형 포대자루 고리에 두 팔(포크)을 밀어넣었다. 지게차가 포대를 들어 정선기(알곡에서 이물질을 가려내는 기계) 위로 올렸다. 위생복과 위생모를 착용한 최강은(우리밀식품 대표)이 포대 아래를 열었다. 밀알들이 정선기 안으로 쏟아졌다. 딸려 들어간 잡초와 돌멩이들이 기계 안에서 밀과 분리됐다. 밀은 지난 6월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수확됐다. 백남기가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긴 밀이 대를 이었다.

2015년 11월12일 백남기는 3000여평의 밭에 손으로 밀을 뿌렸다. 11월14일 서울행 관광버스(민중총궐기 참여 상경)를 탄 뒤 다시는 밀밭을 밟지 못했다. 그가 국가폭력으로 쓰러진 뒤에도 그의 밀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뿌려졌을 뿐 돌봄 받지 못한 밀은 밭에 침입한 사료작물에 양분을 빼앗겨 앙상하게 야위었다. 그가 7개월째 사경을 헤매던 지난해 6월13일 아내 박경숙이 남편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마지막 밀을 수확(2016년 6월18일 ‘백남기 밀 수확 날, 콤바인도 부재를 알아차렸다’)했다. 최강은이 그 허약한 밀(1.3t 수확)을 전량 매입했다. 밀알 일부는 보관 용기에 넣어 영구보존하고, 나머지로는 우리밀 세트 1200개를 만들었다. ‘형님’의 뜻을 기리는 이들에게 판매해 백남기기념사업회(예정)의 뿌리기금으로 적립했다.

9월2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리밀식품에서 밀이 담긴 800㎏ 자루를 지게차가 정선기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오른쪽이 최강은 대표.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9월2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리밀식품에서 밀이 담긴 800㎏ 자루를 지게차가 정선기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오른쪽이 최강은 대표.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가 남긴 ‘마지막 밀’ 보존사업
웅치면 11개 농가 참여해 확대·생산
지난 6월 19t 수확해 밀 음식 가공
‘백남기 밀 세트’로 차린 추석 차례상

통밀이 도정기로 들어갔다. 정선을 마친 밀은 7~8분도로 도정됐다. “섬유질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라고 최강은은 설명했다. 공장 마당에선 ‘농민 백남기 선생을 위한 추모의 벽’이 밀이 가루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지난해 10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설치한 것을 최강은이 장례 뒤 동의(부춘마을 입구 설치 추진)를 얻어 옮겨왔다.

백남기의 ‘홀로 자란 밀’은 소출이 평년의 절반에 그쳤다. 생육이 부실해 후대의 품질을 장담할 수 없었다. 후배들은 그의 집이 있는 웅치면 11개 농가(백남기 밀밭 포함)에 그가 남긴 밀과 동일 품종의 ‘백중밀’(국수용)을 심고 ‘백남기 우리밀’로 이름 붙였다. 지난해 11월 파종해 올해 6월 19t을 얻었다.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본부장 최강은)가 주주로 참여하는 우리밀식품이 모두 매입했다. 우리밀식품에서 가공된 백남기 밀은 냉면, 쫄면, 국수, 수제비 등으로 재탄생했다.

도정을 마친 통밀이 제분기에서 밀가루가 됐다. 반죽기에서 치대진 밀가루는 3일 숙성 뒤 성형기에서 국수로 뽑히거나 수제비로 빚어졌다. 냉각과 숙성을 거듭하며 1㎏씩 포장된 제품들이 백남기의 얼굴이 찍힌 스티커를 붙이고 출고·배송됐다.

9월28일 아침 최강은이 ‘백남기 세트’ 몇개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가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로 차를 몰았다.

우리밀식품 마당에서 ‘농민 백남기 선생을 위한 추모의 벽’이 그의 밀이 도정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리밀식품 마당에서 ‘농민 백남기 선생을 위한 추모의 벽’이 그의 밀이 도정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게차가 들어올린 대형 포대 아래를 열자 밀알들이 정선기 안으로 쏟아졌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게차가 들어올린 대형 포대 아래를 열자 밀알들이 정선기 안으로 쏟아졌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소”

“그 양반이 있을 땐 퇴비도 뿌리고 낫질해서 수확도 했지만.”

백남기의 아내 박경숙(64)이 깻잎을 뜯으며 말했다. 상에 올릴 음식에 필요한 채소들을 그가 쟁반에 따 넣었다. 그가 가지를 따고 고추를 땄다. 노각이 되기 직전의 오이를 하나 땄고, 덩굴을 헤쳐 껍질 부드러운 애호박도 찾아냈다. 무밭에선 싱싱한 무청을 잘랐다. 최강은과 최영추(65·전 보성군농민회장)와 김정섭(현 보성군농민회장)이 형수님이 혼자 돌본 밭에서 그를 도왔다.

남편이 떠난 뒤 박경숙의 농사는 집 뒤의 텃밭 하나로 줄어들었다. 1989년 남편과 활성산 자락의 소나무를 캐내(해충 방제 위한 보성군 요청) 6500평 밭을 일군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았던 밀농사는 남편 사후 보성군농민회에 경작(‘백남기 밀’ 보존사업)하도록 내줬다. ‘그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이틀 전 남편이 뿌린 밀을 그해 가을부터 후배들이 두번 거두고 한번 재파종했다.

올해 수확을 끝낸 밀밭에선 콩이 자라고 있었다. 콩은 ‘뒷그루 작물’이었다. 6월 중순 밀 수확부터 11월초 재파종 사이에 심고 거두는 콩은 밀과 ‘농사의 합’이 맞았다. 콩을 삶고 된장을 담가 판 돈으로 박경숙은 남편이 벌어오지 못한 생활비를 보충했었다. 그가 최영추를 보며 “허리가 너무 아파 이젠 된장 일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최영추가 감을 하나 따서 박경숙에게 건넸다.

“서리가 내려야 맛이 달고 청량해질 거인디.”

편하게 “오라시 오라시”(박경숙) 했지만 “정확하게는 월하시(月下?·최영추)였다. ‘그 시적인’ 감(곶감용)이 밭 옆에서 한창 붉음을 얻고 있었다. 감나무를 심은 ‘남기 형님’이 세상에 없지만 감은 달빛 아래서 때를 어기지 않고 익어갔다. 2015년 11월 서울에서 한 남자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을 때 최영추도 광화문에 있었다. 최루액으로 얼굴이 희뿌예진 남자가 형님이란 사실을 그는 허리띠 버클(1991년 가톨릭농민회 창립 25주년 기념품을 25년간 사용)로 확인해 형수님에게 알렸다.

‘오이삼’(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날짜로 이름 지은 개. 수컷)과 ‘팔일팔’(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일. 암컷)은 이날도 예외 없이 짖었다. 전에 없던 강아지 두마리가 옆에서 목청을 보탰다.

“장례(2016년 11월5일) 치르고 와 보니 팔일팔의 배가 토실토실하데요. 집이 비어 있을 때 어떤 수컷 놈이 다녀갔는가.”

팔일팔의 새끼들은 아직 이름을 얻지 못했다. “경황이 없었기 때문”(박경숙)이기도 했고, “이름 참 특이하게 짓던 형님이 없어서”(최강은)이기도 했다. 개 네마리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고인의 작은어머니가 툇마루에서 부추를 다듬었다. “조카 간 뒤부터 동네가 으스스한 게 힘이 없다”며 눈물을 훔쳤다.

정선기를 거친 통밀이 섬유질을 최대한 살린 7~8분도로 도정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선기를 거친 통밀이 섬유질을 최대한 살린 7~8분도로 도정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냉각과 숙성을 거친 ‘백남기 밀 수제비’가 1㎏씩 포장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냉각과 숙성을 거친 ‘백남기 밀 수제비’가 1㎏씩 포장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형님이 붙인 촛불이 밑불 돼 정권 교체”
‘병사’가 ‘외인사’로 바로잡히고 총리 사과
“경찰청장의 사과는 진정성 믿지 않아”
이낙연 총리 면담 때 백남기 밀세트 선물

사흘 전(9월25일) 백남기가 떠난 지 1년이 꽉 찼다. 9월23일 서울 광화문과 이튿날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서 1주기 추모대회가 열렸다. 박경숙에게 지난 시간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지난해 11월5일 광화문에서 백남기의 영결식을 마친 유족과 후배들이 장례 버스를 타고 광장을 빠져나왔다. “도로 각 방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시민들(2차 촛불집회)을 버스 안에서 보면서 ‘백남기가 촛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두 울었”(최강은)다. 지난 6월15일 서울대병원은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고쳤고, 이튿날 이철성 경찰청장이 그의 사망을 두고 사과했다. 9월7일 딸 백도라지를 만난 검찰은 ‘조속한 결론’(2015년 11월18일 강신명 등 7명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 고소) 방침을 밝혔고, 9월19일 이낙연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사흘 뒤 총리를 직접 만났을 때 박경숙은 남편의 이름을 붙인 밀 세트를 가져가 선물했다.

1㎏씩 담긴 ‘백남기 밀 수제비’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박스 포장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씩 담긴 ‘백남기 밀 수제비’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박스 포장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차례상 위로 돌아온 백남기 밀

프라이팬에서 부침개가 자글자글 끓었다. 작은어머니가 씻어온 부추를 박경숙이 칼로 썰었다. 깻잎을 썰고 고추를 썰고 애호박을 썰었다. 남편의 밀로 만든 튀김·부침가루를 뿌려 물에 갰다. 박경숙이 부침개 첫 장을 제기에 담아 차례상에 올렸다.

남편의 이름을 받은 밀의 판매가 부진했다. 11개 농가에서 거둔 백남기 밀 1만9120㎏(40㎏ 478가마)이 지난 6월 우리밀식품으로 입고됐다. 1만1120㎏(278가마)이 소진됐고 8000㎏(200가마)이 주문 미달로 창고에 쌓였다. 높은 가격 탓이 컸다. 우리밀은 쌀과 달리 정부가 수매하지 않았다. 민간(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와 농협 등)이 우리밀을 수매·유통하면서 수입 밀보다 값이 3.5배 비싸졌다. “내년에 형님(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 공동의장. 보성군 1호 우리밀 농민) 밀 생산을 확대하자면 올해 거둔 밀부터 소진해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최강은은 걱정했다. 김정섭은 “11월 파종 땐 보성군의 50여 농가가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침개, 사과, 배, 밤, 감(월하시) 등이 하나씩 상에 차려졌다. 딸(백도라지)이 아버지 차례상에 올리라며 보내준 반건조 옥돔도 구웠다. 조금 늦게 도착한 문경식이 제례에 맞춰 음식의 위치를 조정했다. 그도 보성군의 농민이었다. “1982년 형님이 농사짓겠다며 서울서 내려왔을 때부터 같이 활동”했다. 박경숙이 물 끓는 냄비에 국수를 넣었다. 작은어머니가 조카며느리 없을 때 조용히 물었다.

“우리 조카한테 물대포 쏜 놈들은 어째 지내고 있다요. 아무 일 없이 잘 살고 있능가.”

‘조카’가 쓰러진 날이 2년을 채워가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월26일 살수 경찰관 2명이 ‘청구인낙서’(유족의 손해배상 청구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동안 사과를 막아온) 조직이 야속했다”고도 했다.

“이제 와서 그런들 그 양반이 살아 돌아온답니까.”

박경숙은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도 진정성을 믿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의 부인 박경숙씨가 9월28일 자택 텃밭에서 남편의 차례 음식을 만들 채소를 따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농민의 부인 박경숙씨가 9월28일 자택 텃밭에서 남편의 차례 음식을 만들 채소를 따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경숙씨가 차례 음식에 쓸 채소들을 쟁반에 따 넣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경숙씨가 차례 음식에 쓸 채소들을 쟁반에 따 넣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편의 마지막 밀로 만든 통밀가루에 박경숙씨가 부추, 애호박, 고추 등을 썰어 넣고 부침개를 만들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편의 마지막 밀로 만든 통밀가루에 박경숙씨가 부추, 애호박, 고추 등을 썰어 넣고 부침개를 만들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아내 박경숙이 밭에서 키운 채소 더해
칼국수 끓이고 부침개 부쳐 상에 올려
후배들 절 올리며 “형님 뜻 이루겠다”
백남기 밀, 내년 보성군 전체 확대 계획

“그 사람이 부검하겠다고 난리친 경찰의 총책임자 아녀요? 정권 바뀌니까 자기 살겠다고 그러는 거 아녀요?”

강신명·구은수(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죽음의 지휘자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방 밖에서 아기 고양이 ‘얌체’가 울었다. 두달 전 밭에서 깻잎을 따던 박경숙의 발치에서 “앙상허니 마른 갓난쟁이”가 꼬물거렸다. 그가 집으로 안고 온 고양이는 팔오팔의 새끼들과 더불어 남편 없는 집에 찾아온 새 생명들이었다.

낮 12시20분 남편의 밀로 끓인 국수를 박경숙이 마지막으로 상에 올렸다. 백남기가 유언처럼 남긴 밀이 1주기 만에 소박한 음식으로 그에게 돌아왔다.

백남기 농민의 후배들이 형님의 밀로 차린 차례상 앞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섭 현 보성군농민회장, 최강은 우리밀식품 대표, 최영추 전 보성군농민회장, 문경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농민의 후배들이 형님의 밀로 차린 차례상 앞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섭 현 보성군농민회장, 최강은 우리밀식품 대표, 최영추 전 보성군농민회장, 문경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농민의 1주기 사흘 뒤인 9월28일 그의 방에서 그의 밀로 차린추석 차례상.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농민의 1주기 사흘 뒤인 9월28일 그의 방에서 그의 밀로 차린추석 차례상.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후배들이 차례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김정섭이 형님이 좋아하던 막걸리를 따랐고 최영추가 술잔에 받아 상에 올렸다. 최영추가 사진 속 형님에게 말했다.

“남기 형님, 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가신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가을 들판에선 곡식이 익고 있는데 형님이 같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형님 꿈꾸셨던 세상이 빨리 오도록 저희가 노력하겠습니다.”

최영추가 던져준 ‘백남기 국수’ 가닥이 얌체의 얼굴에 걸렸다. 발로 국수를 떼어낸 얌체가 입에 물고 맛을 다셨다.

광주 보성/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백남기 밀’을 퍼뜨려주세요

‘백남기 우리밀’ 세트는 두 종류로 구성됐다. 4만9천원 세트(밀냉면·비빔냉면·쫄면·통밀보리수제비 각 2봉+통밀쌀 1봉)와 2만9천원 세트(통밀가루·부침가루·칼국수·쫄면·보리수제비)는 수익금 중 각각 1만원과 2천원씩 백남기기념사업회 기금으로 적립된다. 1주기에 맞춰 출범할 계획이던 기념사업회는 책임자 처벌 등이 이뤄지지 않아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주문: woorimil@hanmail.net
문의: 1588-6208, www.woorimilro.co.kr
입금계좌: 농협 355-0007-0234-63 우리밀식품
*추석 연휴로 배송은 10월10일부터

백남기 밀로 가공해 만든 우리밀 식품.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밀로 가공해 만든 우리밀 식품.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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