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특집
백남기 농민이 남긴 ‘마지막 밀’
백남기 농민이 남긴 ‘마지막 밀’
‘백남기 우리밀’로 차린 간소한 차례상(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앞에서 그의 후배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6년 6월13일 <한겨레>는 고 백남기 농민의 3000여평 밀밭 수확 현장에 함께했다. 그가 경찰 물대포를 맞기 이틀 전 파종한 밀이 1.3t의 알곡을 이 땅에 남겼다. 밀 수확 뒤 4개월이 채 못 돼 그는 세상을 떠났고, 후배들은 그 밀로 ‘백남기 밀’ 보존사업을 시작했다. 부춘마을(전남 보성군) 11개 농가가 동참해 올해 19t을 얻었다. 고인이 이 땅에 남긴 마지막 밀이 두 번째 소출을 내며 그의 1주기(9월25일)와 추석(10월4일)을 맞았다. 아내 박경숙씨가 그 밀로 음식을 만들어 소박한 차례상을 차렸다.
백남기 7개월째 사경 헤매던 작년 6월
아내가 후배들의 도움 받아 1.3t 수확
돌볼 사람 없이 홀로 자라 야위고 앙상 그가 남긴 밀로 만든 음식들이 그의 차례상 위에 놓였다. “형님이 살리고자 하신 우리밀을 가지고 간단한 추석상이나마 올립니다.” 9월28일 오후 형님의 방에서 동생 문경식(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말했다. 2016년 추석(9월15일) 열흘 뒤 형님은 숨을 멈췄고, 형님의 1주기 열흘째 되는 날(10월4일) 2017년 추석이 돌아왔다. 그의 아내가 만든 음식을 그의 사진 앞에 두고 동생들이 무릎을 꿇었다. 머리 숙여 절하는 동생들 앞에서 형님 백남기가 미소 지었다.
남편이 7개월째 사경을 헤매던 지난해 6월13일 박경숙씨가 남편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마지막 밀을 수확했다. 수확 하루 전 박경숙씨가 밀밭에서 밀을 살펴보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9월27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리밀식품에서 밀이 담긴 800㎏ 자루를 지게차가 정선기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오른쪽이 최강은 대표.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웅치면 11개 농가 참여해 확대·생산
지난 6월 19t 수확해 밀 음식 가공
‘백남기 밀 세트’로 차린 추석 차례상 통밀이 도정기로 들어갔다. 정선을 마친 밀은 7~8분도로 도정됐다. “섬유질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라고 최강은은 설명했다. 공장 마당에선 ‘농민 백남기 선생을 위한 추모의 벽’이 밀이 가루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지난해 10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설치한 것을 최강은이 장례 뒤 동의(부춘마을 입구 설치 추진)를 얻어 옮겨왔다. 백남기의 ‘홀로 자란 밀’은 소출이 평년의 절반에 그쳤다. 생육이 부실해 후대의 품질을 장담할 수 없었다. 후배들은 그의 집이 있는 웅치면 11개 농가(백남기 밀밭 포함)에 그가 남긴 밀과 동일 품종의 ‘백중밀’(국수용)을 심고 ‘백남기 우리밀’로 이름 붙였다. 지난해 11월 파종해 올해 6월 19t을 얻었다.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본부장 최강은)가 주주로 참여하는 우리밀식품이 모두 매입했다. 우리밀식품에서 가공된 백남기 밀은 냉면, 쫄면, 국수, 수제비 등으로 재탄생했다. 도정을 마친 통밀이 제분기에서 밀가루가 됐다. 반죽기에서 치대진 밀가루는 3일 숙성 뒤 성형기에서 국수로 뽑히거나 수제비로 빚어졌다. 냉각과 숙성을 거듭하며 1㎏씩 포장된 제품들이 백남기의 얼굴이 찍힌 스티커를 붙이고 출고·배송됐다. 9월28일 아침 최강은이 ‘백남기 세트’ 몇개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가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로 차를 몰았다.
우리밀식품 마당에서 ‘농민 백남기 선생을 위한 추모의 벽’이 그의 밀이 도정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게차가 들어올린 대형 포대 아래를 열자 밀알들이 정선기 안으로 쏟아졌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선기를 거친 통밀이 섬유질을 최대한 살린 7~8분도로 도정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냉각과 숙성을 거친 ‘백남기 밀 수제비’가 1㎏씩 포장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병사’가 ‘외인사’로 바로잡히고 총리 사과
“경찰청장의 사과는 진정성 믿지 않아”
이낙연 총리 면담 때 백남기 밀세트 선물 사흘 전(9월25일) 백남기가 떠난 지 1년이 꽉 찼다. 9월23일 서울 광화문과 이튿날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에서 1주기 추모대회가 열렸다. 박경숙에게 지난 시간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지난해 11월5일 광화문에서 백남기의 영결식을 마친 유족과 후배들이 장례 버스를 타고 광장을 빠져나왔다. “도로 각 방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시민들(2차 촛불집회)을 버스 안에서 보면서 ‘백남기가 촛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모두 울었”(최강은)다. 지난 6월15일 서울대병원은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고쳤고, 이튿날 이철성 경찰청장이 그의 사망을 두고 사과했다. 9월7일 딸 백도라지를 만난 검찰은 ‘조속한 결론’(2015년 11월18일 강신명 등 7명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 고소) 방침을 밝혔고, 9월19일 이낙연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사흘 뒤 총리를 직접 만났을 때 박경숙은 남편의 이름을 붙인 밀 세트를 가져가 선물했다.
1㎏씩 담긴 ‘백남기 밀 수제비’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박스 포장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농민의 부인 박경숙씨가 9월28일 자택 텃밭에서 남편의 차례 음식을 만들 채소를 따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경숙씨가 차례 음식에 쓸 채소들을 쟁반에 따 넣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남편의 마지막 밀로 만든 통밀가루에 박경숙씨가 부추, 애호박, 고추 등을 썰어 넣고 부침개를 만들고 있다.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칼국수 끓이고 부침개 부쳐 상에 올려
후배들 절 올리며 “형님 뜻 이루겠다”
백남기 밀, 내년 보성군 전체 확대 계획 “그 사람이 부검하겠다고 난리친 경찰의 총책임자 아녀요? 정권 바뀌니까 자기 살겠다고 그러는 거 아녀요?” 강신명·구은수(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죽음의 지휘자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방 밖에서 아기 고양이 ‘얌체’가 울었다. 두달 전 밭에서 깻잎을 따던 박경숙의 발치에서 “앙상허니 마른 갓난쟁이”가 꼬물거렸다. 그가 집으로 안고 온 고양이는 팔오팔의 새끼들과 더불어 남편 없는 집에 찾아온 새 생명들이었다. 낮 12시20분 남편의 밀로 끓인 국수를 박경숙이 마지막으로 상에 올렸다. 백남기가 유언처럼 남긴 밀이 1주기 만에 소박한 음식으로 그에게 돌아왔다.
백남기 농민의 후배들이 형님의 밀로 차린 차례상 앞에서 차례를 지내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섭 현 보성군농민회장, 최강은 우리밀식품 대표, 최영추 전 보성군농민회장, 문경식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농민의 1주기 사흘 뒤인 9월28일 그의 방에서 그의 밀로 차린추석 차례상. 보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백남기 밀’을 퍼뜨려주세요
‘백남기 우리밀’ 세트는 두 종류로 구성됐다. 4만9천원 세트(밀냉면·비빔냉면·쫄면·통밀보리수제비 각 2봉+통밀쌀 1봉)와 2만9천원 세트(통밀가루·부침가루·칼국수·쫄면·보리수제비)는 수익금 중 각각 1만원과 2천원씩 백남기기념사업회 기금으로 적립된다. 1주기에 맞춰 출범할 계획이던 기념사업회는 책임자 처벌 등이 이뤄지지 않아 시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주문: woorimil@hanmail.net
문의: 1588-6208, www.woorimilro.co.kr
입금계좌: 농협 355-0007-0234-63 우리밀식품
*추석 연휴로 배송은 10월10일부터
문의: 1588-6208, www.woorimilro.co.kr
입금계좌: 농협 355-0007-0234-63 우리밀식품
*추석 연휴로 배송은 10월10일부터
백남기 밀로 가공해 만든 우리밀 식품. 광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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