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공동대표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공동대표
1994년 파키스탄 출신 남편과의 결혼으로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공동대표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 차별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이주민·종교 등 차별 현실 지켜봐
“대놓고 모욕하는 사람은 줄었지만
특정 집단 혐오표현 심각성 인지 못해” 1994년 어느 날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던 27살 정혜실에게 한 남성이 말을 건넨다. “혹시, 차 한잔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유난히 까무잡잡한 피부색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아무래도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 같았다.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3대째 교회에 다니고 있는 기독교인이니 인류애를 발휘해보자 싶었다. ‘만약 저 사람 피부색이 달랐어도 내가 피하려 했을까?’ 파키스탄에서 온 무슬림이라고 했다.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느 나라나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거죠.” 무심코 던진 질문에 생각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허세가 없고 겸손한 성품이 마음에 들었다.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다.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 종교와 국경을 넘어선 ‘국제결혼’을 하기까지 정혜실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대학을 나왔고,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췄으니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는 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파키스탄에서 결혼식 올리고 김포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려는 데 남편만 따로 불러선 한 시간 넘게 추궁을 하더라고요. 아, 굉장히 무시하고 있구나, 모욕감을 느꼈죠. 그땐 막 큰 소리로 따졌어요. ‘아니, 미국 사람한테도 그럴 거예요?’ 국력에 따라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차 있다고 시비 건 사람들 1997년 국적법이 개정되기 전까진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외국인 남성은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외국인 여성과 달리, 한국 국적을 받을 길이 없었다. 당시 가족관계 문서였던 호적등본에도 ‘남편’ 이름을 기재할 수 없었다. 서류상 그는 미혼이었다. 남편이나 파키스탄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술 취한 남자들로부터 ‘양공주’라며 손가락질을 당했다. “국가가 대놓고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 소수자라고 말해주더라고요.” 남편의 한국살이도 녹록지 않았다. 주차를 하는 와중에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차를 살 수 있냐,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황당한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두 자녀를 출산하면서부턴 교육과 아동 빈곤 문제로 관심이 확장됐다. 그렇게 인권활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정혜실은 현재 비영리 미디어운동단체 이주민방송(MWTV) 공동대표이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성적 지향, 고용 형태, 출신 국가, 인종, 사회적 지위 등을 근거로 한 비합리적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이다. 2007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예고했지만 ‘성적 지향’ 차별 금지를 놓고 동성애 반대 진영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면서 10년째 법 제정은 제자리걸음 상태다.
서울 문래동에 마련된 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freeport·자유항).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가 운영하는 대안문화공간으로 국적·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지구인들이 편하게 와서 즐길 수 있는 예술공간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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