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서 30년간 소방관으로 일하고 은퇴한 뒤 ‘행복 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는 이상설(63)씨. 이상설씨 제공
지난해 12월 초 경기도 용인에서 개인택시를 운행하던 이상설(63)씨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손님을 만났다. 이날 돌을 맞은 1살배기 아기와 엄마였다. 아기 엄마는 예약 시간보다 조금 늦게 택시에 올랐다. “아기가 오늘 돌인데 치장을 하느라 늦었다”며 이씨에게 사과했다. 엄마 품에서 아기가 활짝 웃었다. 이씨는 본인도 모르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생일 축하한다. 오늘 돌잔치 하는 곳까지 무료로 태워다줄게 아가야.” 이날부터 이씨는 ‘행복 택시’를 시작했다.
이씨는 용인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행복 택시’ 기사다. ‘행복 택시’는 이씨가 자신의 택시에 붙인 별명으로, 인근 대학생이나 중·고생들을 종종 무료로 태워주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지난 8일 ‘명지대학교 대나무숲 엘티이(LTE)’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한 누리꾼이 이씨의 택시 사진을 올리며 “버스정류장에서 명지대 올라가려고 기다리는데 택시기사분께서 부르셔서 무료로 태워주셨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나도 타봤다” “필요할 때 부르라고 번호를 주셨다”는 댓글도 이어졌다.
이씨는 이따금 무료로 택시 운행을 하는 이유를 “봉사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직 소방관이다. 지난해 6월, 30년간 몸담았던 소방조직에서 정년퇴직한 후 그해 11월 택시기사로 전업했다. 용인시에서 개인택시 면허를 추가로 발급하면서 퇴직한 공무원 몫이던 한 자리가 이씨에게 돌아왔다. 이씨는 “퇴임하면서 받은 대통령 표창과 소방차 운전 경력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봉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상설씨와 그가 운행하는 ‘행복 택시’. 이상설씨 제공
“무료로 태워주고 싶은 분들을 보면 돈을 받지 않는다”는 이씨가 그동안 택시비를 받지 않은 손님은 다양하다. 휴가 나온 군인, 아기를 데리고 탄 엄마, 편의점에서 늦은 시간까지 아르바이트 하고 귀가하는 대학생 등이 행복택시 손님이었다. 밤에는 이씨와 같은 동네에 사는 중·고생, 대학생 등이 휴대전화로 연락하면 무료로 집까지 데려다주기도 한다. 이씨는 “어떤 사람들은 ‘택시 영업하면서 돈을 안 받으면 (자칫 부당요금행위로) 시에서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과태료를 내게 되더라도 늦은 시간에 날 찾는 학생이 있으면 태워다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행복 택시’에는 제세동기, 소화기 등 긴급구조함이 갖춰져 있다. 이상설씨 제공
전직 소방관이 운영하는 택시답게 이씨는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해 갖가지 물건을 갖춰뒀다. 택시 트렁크에는 심폐소생술을 위한 심장 충격기와 소화기 등이 들어 있다. 이씨는 “배운 게 인명구조다 보니 200만원 들여 심장 충격기를 마련하고 소화기도 3대를 갖고 다닌다”며 “(손님들이 심심할까봐) 태블릿피시(PC)도 뒀고,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무료로 태워준 걸 계산해보면 얼마 정도 되느냐”는 질문에 “금액을 따지고 싶지 않다”고 답한 이씨는 행복 택시 기사를 오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손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이게 (택시기사로서) 보람이고 행복이라는 걸 배워요. 택시 운전은 정년이 없으니까 건강하기만 하다면 여든살에도 하고 싶어요.”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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