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벌어진 배우 송선미씨 남편 고아무개(44)씨 살해사건이 재산 분쟁 중이던 사촌 동생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청부살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 자료를 보면, 사건은 재일교포 1세로 일본에 호텔 등을 보유한 자산가 곽아무개(99)씨가 국내에 보유한 680억원대 부동산 때문에 시작됐다. 곽씨의 장남(72)과 장손(38)은 지난해 11월부터 위조한 증여계약서 등을 이용해 부동산 빼돌리기에 나섰다. 이에 곽씨는 올 2월 외손자인 고씨의 도움을 받아 장남과 장손을 경찰에 고소했다. 수사를 했던 경찰은 사문서위조 혐의 등을 적용해 두 사람의 구속영장까지 신청했지만, 법원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이를 기각했고, 경찰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장손 곽씨가 알고 지내던 후배인 조아무개(28)씨에게 사촌 형인 고씨를 살해해 달라고 살인 교사를 한 시점은 영장 기각 직후인 지난 7월 말”이라고 설명했다. 조씨는 2012년 일본 어학원에서 장손 곽씨를 만나 올해 5월부터 함께 거주한 인물로, 장손 곽씨로부터 “고씨를 죽이면 20억원과 변호사비를 주고 가족까지 돌봐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조씨는 고씨에게 “장손 곽씨에게 버림받았다. 외할아버지 재산 정보를 알려주고 소송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며 접근했고, 지난 8월21일 고씨를 만난 서울 서초동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준비해간 흉기로 그를 찔러 살해했다. 범행 직후 경찰에 체포된 조씨는 “정보제공 대가로 2억원을 받기로 했는데 1000만원만 줘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장손 곽씨가 살인을 교사한 사실을 감추고자 지어낸 말이었다.
‘우발적인 살인’으로 결론 날 뻔 했던 사건은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조씨와 장손 곽씨의 휴대전화·노트북 등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검찰은 조씨가 ‘흥신소를 통해 조선족을 동원한 청부살인 방법’, ‘암살 방식’ 등을 검색한 사실을 확인했고, 장손 곽씨가 조씨에게 ‘필리핀 가서 살면 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파악했다. 장손 곽씨는 살인 발생 직후 ‘살인교사죄 형량’, ‘우발적 살인’ 등을 검색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여러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대자 살해범 조씨가 곽씨의 살인 교사 사실을 자백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범행 장소를 변호사 사무실로 정한 경위도 밝혀냈다. 곽씨는 고씨의 매형이자 관련 민·형사사건을 담당하던 변호사도 함께 살해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확보한 이들의 통화 녹음파일에서 조씨는 “묻을라면 둘(고씨와 변호사) 다 묻어야 돼”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씨가 (변호사까지 죽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거절하자 곽씨가 ‘변호사가 겁이라도 먹게 변호사 앞에서 피해자를 죽여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할아버지 곽씨의 재산을 빼돌리려 한 혐의(사문서위조 등)로 그의 장남과 장손 그리고 이들을 도운 법무사 김아무개씨를 지난 13일 구속기소하고, 청부살인 의혹을 규명하고자 추가 수사를 진행해 왔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이진동)는 장손 곽씨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해 추가 기소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