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당시 월 평균 임금으로 위로금 산정
60년대 임금 6천446원, 위로금 92만원에 불과
법 개정됐지만… 2천만원 범위로 한정돼
“위로금이 오히려 마음 상처를 후벼팠다”
60년대 임금 6천446원, 위로금 92만원에 불과
법 개정됐지만… 2천만원 범위로 한정돼
“위로금이 오히려 마음 상처를 후벼팠다”
지난 1961년 경기도 포천시에 살고 있던 정명섭씨(67·당시 11살)는 동네 친구들과 인근 개천으로 마실을 나갔다 변을 당했다. 개천가에 묻혀 있던 지뢰가 터진 것이다. 이 사고로 그는 왼쪽 손을 잃었다. 60여년 가까이 지뢰 피해자를 외면했던 정부가 민간인 지뢰 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가 국가로부터 지급받은 위로금 명목의 금액은 ‘38만1737원’. 1961년 사고 당시 월 평균 임금 2625원을 기준으로 산정된 금액이었다. 그는 “지난 56년의 힘든 삶에 대한 위로금이 고작 38만원이라니 너무나 참담하다”고 말했다.
정씨와 같은 민간인 지뢰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지뢰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 결정을 취소하라고 소송에 나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사단법인 평화나눔회 등은 2일 서울 서초구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에 제대로 된 책임과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지뢰피해자 지원 심의위원회를 상대로 지뢰피해자 위로금 심의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정씨와 같은 민간인 지뢰피해자, 유가족 등 12명이 소송의 원고로 참여한다.
지난 2014년 제정된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지뢰피해자 특별법)’은 피해자가 지뢰 폭발로 숨지거나 상해를 입을 당시의 월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위로금을 산정해 문제가 됐다. 이후 ‘사고 당시 월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한 위로금이 2천만원에 이르지 않을 경우 2천만원의 범위 내에서 위로금을 조정·지급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그 결과, “사고 시기나 피해 정도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2천만원의 위로금이 결정되고 있다”는 게 평화나눔회쪽 설명이다. 민간 지뢰피해자 중 72.8%는 1970년대 이전에 사고를 당한 이들로, 사고 당시 월 평균 임금이 낮기 때문에 결국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2천만원 수준의 위로금을 지급받게 된다. 정씨의 경우, 위로금이 2천만원으로 조정돼 지급된다 하더라도 의수 구입 비용, 치료비 등을 포함한 국가의 보상금 총액은 3천33만9천원에 그쳤다.
소송에 참여하는 이경옥씨는 다섯 살이었던 1967년 8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강가에 놀러갔다 변을 당했다. 강변에 묻혀있던 M14 지뢰가 폭발한 것이다. 이 사고로 그는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 월 평균 임금 6446원을 기준으로 산정된 위로금은 91만9530원. 위로금이 2천만원으로 조정되더라도, 치료비 등을 합산한 보상금은 4300여만원에 불과했다. 이씨는 “저는 국가의 ‘지뢰받이’다. 누군가 밟아야 터지는 그 지뢰를 제가 밟은 것뿐이다. 하지만 지난 50년 삶에 대한 보상이 너무나 허무하다. 위로금이 오히려 상처를 후벼팠다”고 말했다.
이들은 “민간 지뢰 피해자들도 납북피해자나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같이,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시점의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위로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 이사장은 “민간인 지뢰피해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방식은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을 시키고 65년 만에 체불임금 99엔을 지급한 일본 기업 미쯔비시의 방식과 다를 바 없다. 지뢰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생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도록 위로금 산정의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평화나눔회의 조사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올해 6월까지 집계된 국내 지뢰피해자 수는 605명이다. 조사되지 않은 피해까지 합하면 민간인 지뢰피해자는 1천여명으로 추산된다.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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