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탁틴내일이 7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속 그루밍,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탁틴내일 제공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전형적인 특성인 ‘그루밍’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두고, 법조계와 성폭력 피해 전문가, 아동·청소년 보호 활동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아동·청소년 보호단체 사단법인 탁틴내일은 7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속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루밍’이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으로, 피해자를 유인하고 길들여 성착취 행위를 용이하게 하고 피해 폭로를 막는 행위를 뜻한다.
토론회에는 윤선영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 단장을 비롯해 배승민 가천의대 정신의학과 교수, 임수희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 등 140여명의 법조계, 아동·청소년 보호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그루밍의 개념과 피해 실태를 공유하고, 아동·청소년 보호 현장, 법 집행 과정에서 그루밍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토론했다. 김미랑 탁틴내일 연구소장은 그루밍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정과 사랑 욕구가 있다. 아무에게도 받지 못했던 사랑을 받는다고 믿게 된 아동은 가해자의 그루밍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매우 어려우며, 그 실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가해자와 종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출, 방임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가정환경에 놓인 아동·청소년이 그루밍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가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접수된 성폭력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전체 78건 가운데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 사례가 34건(43.9%)을 차지했다. 학원·학교 교사가 진로 상담을 하면서 신뢰를 쌓거나, 친아버지가 ‘다른 아빠들도 이렇게 한다’며 성행위를 정당화하는 식이다.
한국의 수사기관과 법원이 ‘그루밍’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는 판례 분석을 통해 “현행 법 집행 과정에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관점이 결여돼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판례를 살펴보면,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왜 즉각적으로 신고하지 않았는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루밍을 당한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가해자를 고소하기 어렵다는 피해자의 심리적인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15살 여중생과 동거하면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연예기획사 대표에 대해 대법원이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 취지로 판결한 사건도 있었다. 해당 사건은 검찰의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토론에서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모니터링 강화하고, 온라인상에서 함정수사 기법을 도입해 그루밍 행위를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차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