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과 관련해 체포된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이 14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도착, 호송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장 3명에게 모두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초유의 사태가 펼쳐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14일 오후 남재준(73), 이병호(77) 전 국정원장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국고손실) 위반 및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가짜 사무실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허위 증언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남 전 원장에게는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로 적용됐다. 이 전 원장에게는 업무상 횡령 및 국정원법상 정치관여금지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또 이날 새벽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던 도중 긴급체포된 이병기(70)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도 15일께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이 전 실장이 조사를 받던 도중 심리적 불안 증세를 보였다”며 긴급체포 배경을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국정원 돈을 받아 박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이재만(51), 안봉근(51) 전 청와대 비서관이 구속된 점을 고려하면 세 전직 국정원장이 모두 구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 세 명의 전직 원장들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을 통해 40억여원에 이르는 특활비를 박 전 대통령 쪽에 전달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남재준 전 원장 시절 월 5000만원이던 상납 규모가 이병기 전 원장을 거치며 월 1억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파악했다. 전직 원장들은 검찰 조사에서 특활비 상납 경위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여겨진 청와대 쪽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고, 관행으로 여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뇌물 공여자’와 ‘중간 전달자’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40억여원 뒷돈의 ‘최종 종착지’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다만, 보수단체 지원 압박 등 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들이 여전히 많아, 이 사건 직접 조사 일정은 한참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남 전 원장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2013년 3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31대 국정원장으로 근무했다. 이병기 전 원장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32대 원장으로 근무하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병호 전 원장은 2015년 3월부터 2017년 5월까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을 지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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