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초등학교 동창인 여중생을 유인, 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첫 공판을 위해 17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2017.11.17 연합뉴스
“딸을 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다 벌 받겠습니다.”
중학생 딸의 친구를 추행한 뒤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이영학(35)씨가 17일 오전 서울북부지법 702호 대법정에서 열린 첫공판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서울북부지법 형사 11부 이성호 재판장이 “다음 공판 기일 때 딸을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하자 보인 행동이었다. 그전까지 이씨는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딸과의 대면은 극구 피하려 애썼다.
법정 왼쪽의 피고인 대기실에 있던 이씨는 판사들이 입장하고 나자 대기실에서 나와 법정을 가로질러 오른쪽 피고인석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어두운 초록색 수의를 입은 이씨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피고인석으로 향한 이씨는 자리에 앉아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딸의 초등학교 동창인 여중생을 유인, 추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첫 공판을 위해 17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2017.11.17 연합뉴스
지난달 3일 이씨와 그의 딸의 도주를 돕고 서울 도봉구 도봉동에 이들 부녀가 머무를 원룸을 구하도록 도와준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공범 박아무개(35)씨는 고개를 세우고 법정으로 들어와 법대를 똑바로 응시했다.
재판시작 직후 이성호 판사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지 않는 것이냐’고 묻자 이씨는 “예”라고 답한 뒤 재판이 끝나갈 무렵까지 대체로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크게 하지 않았다. 검사가 ‘추행의 목적으로 딸의 친구를 유인했다’, ‘향정신성의약품을 입에 흘려넣은 뒤 추행했다’, ‘피해자가 잠에서 깨어나자 피해자의 얼굴을 수건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등 주요 공소사실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이영학은 어두운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판사가 “이 같은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피고인이 저지른 게 맞고 벌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거냐”고 묻자 그제서야 이씨는 고개를 들고 또렷한 목소리로 “예”라고 답했다. 다만 이 판사가 읽은 이영학씨의 반성문에는 “형을 줄여주면 희망을 가지고 살겠다”, “무기징역만 피하게 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판사와 검사의 말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이영학씨는 딸 얘기가 나오자 감정이 격해진 듯 소리내어 흐느껴 울었다. 이 판사가 이씨 반성문에서 ‘딸을 위해 목표가 있는 삶을 살겠다”는 대목을 읽자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한 이씨는 이 판사가 딸을 증인신문 하겠다고 하자 울부짖었다.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던 이씨는 “왜 우냐”는 이 판사의 질문에 “딸을 (법정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 내가 다 벌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 이씨의 국선 변호인은 “증거 능력에 이의가 없다”면서도 “이영학 본인이 환각·망상 증세가 있어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했고 살해는 우발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며 선처를 부탁했다. 공범 박씨는 ‘이영학과 딸을 차로 태운 적은 있지만 딸 친구를 죽이고 도피 중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오전 11시 시작한 재판은 30여분만인 오전 11시30분께 끝났다. 재판부는 이씨의 반대에도 다음 기일에 이씨의 딸을 불러 증인 신문하기로 했다. 재판이 끝나고 피고인 대기실로 향하는 이씨를 향해 박씨 어머니로 추정되는 이가 “넌 친구에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소리를 질러 법원 경위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이씨의 다음 공판은 다음달 8일 오후 2시30분 서울 북부지법에서 열린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