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적부심에서 석방이 결정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2일 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주요 혐의인 정치관여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11월11일)
“피의자의 위법한 지시 및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다툼의 여지가 있어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11월22일)
법원이 불과 11일 사이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혐의와 관련해 극과 극을 오가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 순항할 듯 보였던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1부(재판장 신광렬)가 22일 김 전 장관의 구속 결정을 뒤집고 구속적부심사 청구를 받아들이자,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법원 안에서도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전례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상 구속적부심은 피해자와 합의가 있거나 사정 변경이 있을 때 진행되지만 김 전 장관은 구속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법원 결정이 사안의 중대성을 외면한 처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이 선거에 개입하고 정치에 관여한 것 자체로 심각한 문제인데도, 재판부가 당시의 지휘체계에 따른 책임 등을 무시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 조사 때 “이 사건이 죄가 된다면 모두 내 책임”이라던 김 전 장관은 구속적부심사에서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김 전 장관은 “사이버심리전을 지시했을 뿐 정치관여 댓글 작성 등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거나, “대응작전 결과 등을 보고받고 ‘V’자로 결재한 것을 두고 정치관여에 해당하는 댓글 작성을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태하 전 사이버사 심리전단장 등 부하에게 유죄가 선고됐지만, 장관인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보인 셈이다.
그러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저지른 불법을 보고만 받았다고 하더라도, 장관이 불법을 막지 못하고 방치한 책임은 절대 가볍지 않다”고 꼬집었다. 더구나 검찰은 김 전 장관의 선거 개입 정황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단서까지 확보한 바 있다. 김 전 장관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단계별 대응책을 수립한 문건을 보고받고 결재했다. 이 보고서에는 총선일을 ‘디데이’로 놓고 ‘중도오염 차단’, ‘우익결집 보호’ 등 5단계 선거개입 전략이 담긴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법원은 김 전 장관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검찰 쪽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 8월 말 김기현 전 총괄계획과장이 ‘김 전 장관의 개입’을 언론에 폭로한 다음날 김 전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그와 세 차례 통화하고, 이태하 전 단장의 주거지 압수수색 직후에도 김 전 장관이 그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김 전 장관이 공범들과 증거인멸을 위한 말맞추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조사를 앞두고 다른 조사 대상자에게 연락해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것은 본능의 영역”이라고 항변한 김 전 장관 쪽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은 애초 김 전 장관을 구속기소한 뒤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조사하고 이를 발판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조사로 나아갈 계획이었으나, 차질을 빚게 됐다. 당장 23일 김 전 장관과 같은 혐의로 구속된 임관빈 전 정책실장도 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법적으로 다른 범죄사실이 아니면 김 전 장관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수 없다”며, 일단 불구속 상태에서 관련 수사를 밀고 나갈 뜻을 밝혔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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