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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박근혜는 재판을 거부했지만, 국선변호인은 최선을 다했다

등록 2017-12-02 11:21수정 2017-12-02 12:54

[토요판] 법정 다큐-수인번호 503 ⑪ 불출석 재판의 시작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판이 재개된 지난 11월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부터 강철구, 남현우, 김혜영 변호사.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판이 재개된 지난 11월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이 법원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부터 강철구, 남현우, 김혜영 변호사. 연합뉴스

그는 오지 않았다.

11월27일 오전 10시. 42일 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렸다. 하지만 피고인·변호인석에는 이날 처음으로 법정에 출석한 박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 5명만 앉아 있었다. 박 전 대통령도 그의 지지자들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 방청석은 기자들로 채워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출석은 예상됐던 터라 이날 그의 모습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박근혜 피고인은 출석하지 않았죠?”

이미 불출석 사유서를 받아든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도 놀라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건강상 문제로 불출석 사유서를 보내왔습니다. (서울)구치소 보고서에 의하면 허리 통증 경과를 보고 있고 무릎 부종 진통제 처방받아 먹고 있고 하루 30분 정도 걷기 등 실외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고인 인치(강제로 데려옴)에 대해서는 재판 불출석 의사를 명확히 밝혔고 전직 대통령인 점을 고려하면 현저히 곤란하다는 취지로 구치소에서 보내왔습니다.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불출석 공판(형사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하세요”

재판부는 이날 처음 본 국선변호인단에게 물었다. “선정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접견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조현권(62·사법연수원 15기)·남현우(46·34기)·강철구(47·37기)·김혜영(39·37기)·박승길(43·39기) 변호사들 중 조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견을 원하는 취지의 서신을 11월3일·13일·20일자로 세번 보냈습니다. 첫번째 서신에 대해서는 접견하지 않는다는 뜻을 정중하게 전해달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13일자와 20일자 서신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견이 없었습니다.” 조 변호사는 “불출석 공판에 대해서 별도의 의견이 있습니까”라는 재판부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재판이 시작된 지 6분 만에 재판부는 휴정을 선언했다.

이날 오전 10시20분 재판부가 다시 법정에 들어왔다. “형사재판의 피고인은 공판에 출석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 박근혜 피고인은 공판기일 소환장을 받고도 불출석 사유서만 제출한 후 불출석했습니다. 구치소 보고서에 의하면 피고인에게 거동할 수 없을 정도의 신병 등 불출석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구치소는 여러 이유를 들어 피고인의 인치가 현실적으로 현저히 곤란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의 인치가 불가능할 경우 피고인 출석 없이 공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불출석 공판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계속 거부하는 경우 공판을 진행할 수 있고 그럴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설명한 후 심사숙고한 다음에도 계속 출석을 거부하면 그때 가서 공판을 진행할지 결정하는 게 타당합니다. 오늘은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 공판을 진행할 수 없고 내일 최종 결정하겠습니다.”

42일 만에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23분 만에 끝났다. 이날 증인신문이 예정돼 출석했던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그냥 돌아가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으로 취재진의 관심은 이날 처음 법정에 나온 국선변호인들에게 쏠렸다. 잠시 뒤 조 변호사 등은 취재기자와 카메라 촬영 기자, 사진 취재 기자들이 모여 있던 서울중앙지법 2층 4번 법정 출입구로 나왔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보호자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겁니다. 재판 진행 상황과 변론계획도 서신을 통해 계속 보내겠습니다.” 법정을 나가려는 조 변호사와 그를 잡으며 질문을 하나라도 더 하려는 취재기자, 그 모습을 담으려는 카메라·사진 기자들이 엉켜 좁은 복도가 아수라장이 됐다. 그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까지 조 변호사에게 다가왔다. “목숨을 내놓고 하세요. 나라를 살리는데.”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 법원 관계자들이 변호인들을 감싸안고 법원 밖으로 뛰어나갔다. 질문은 계속됐다. “기록은 어느 정도 보셨습니까.” “5명 모두 자원하신 건 아니죠?” “왜 참석이 어렵다고 하던가요?”

“일요일도 다 나와서 (기록을) 봤다. 5명이 파트를 나눠서 하고 있다”고 말한 조 변호사는 “그만하세요”라며 더는 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지난 10월16일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들이 모두 사퇴의 뜻을 밝히자, 10월25일 서울중앙지법 국선전담변호인 중에서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선임했다. 구속 피고인 등은 반드시 변호인이 필요하고, 변호인이 없다면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 국선전담변호인단의 신상이 공개되면 원활한 재판 준비가 어렵다고 우려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다음 재판이 열릴 때까지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42일 만에 재개된 국정농단 재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출석 거부
“정치보복 재판 내게서 끝나길”
21년 전 반란수괴 전두환과 닮아

법원, 불출석 공판 진행키로
국선변호인 5명 첫 재판 참여
“일요일에도 다 나와 기록 봐
피고인 위해 최선 다하겠다”
최순실씨는 법정서 통곡하기도

11월28일의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오전 10시 법정에 들어온 재판부는 “박근혜 피고인이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에도 건강상의 문제로 출석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유를 들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습니다”라며 발언을 시작했다. “구치소에서 보내온 보고서에 의하면 피고인에게 거동할 수 없을 정도의 신병 문제 등 불출석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구치소는 여러 사유를 들어 피고인 인치가 현저히 곤란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심리할 사항이 많고 제한된 구속기간을 고려하면 더 이상 공판기일 진행을 늦출 수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77조2 규정에 따라 피고인 출석 없이 그대로 공판절차 진행하겠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77조의2는 피고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개정하지 못하는 경우에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없는 첫 궐석재판에서 국선변호인들의 ‘1호 변론’은 태블릿피시 문제였다. 이날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태블릿피시 감정 결과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최서원 피고인은 이 사건 태블릿피시를 본 적도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감정에 의하면 최씨의 셀카, 가족사진이 태블릿피시로 직접 촬영됐고 태블릿피시에 남아 있는 위치정보와 최씨의 동선이 일치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철구 변호사는 “최씨가 사용했다고 계속 주장하는데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이 왜 그 비용을 냈는지 소명이 필요합니다. 사진도 입력한 시간, 날짜 배경을 살펴봐야 하는데 저희가 의견을 밝히겠습니다”라고 반박했다.

피고인은 재판을 포기했지만 국선변호인들은 최선을 다했다. 12월1일로 예정됐던 휴대전화 녹음파일 관련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증인신문에 대해 남현우 변호사는 “압수수색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증거로 돼서는 안 되는 증거를 미리 판단하는 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충실하게 변론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결국 정 전 비서관의 증인신문은 최씨와 최씨의 변호인만 출석해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보좌관 김건훈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도 “안 전 수석으로부터 이영희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 사장에게 전달한 가이드러너 설명자료가 있다고 했는데, 수석이 전달하라고 한 서류를 열람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안 전 수석의 사익추구를 애써 모른 척한 거 아니냐”, “(안 전 수석이)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책임 떠넘기라고 한 것이 아니냐” 같은 질문을 이어갔다. 강 변호사는 이날 재판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궐석재판에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접견도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1996년 12월16일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공판정에 서 있는 12·12 군사반란 사건 피고인 16명의 모습. 앞줄 오른쪽부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어서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6년 12월16일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공판정에 서 있는 12·12 군사반란 사건 피고인 16명의 모습. 앞줄 오른쪽부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어서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 전 대통령보다 21년이나 앞서 보통의 피고인들은 잘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다. “진실을 밝혀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데 이번 재판의 가장 큰 의의가 있습니다. 국선변호인 선임으로 피고인은 방어·보호란 측면에서 회복할 수 없는 심대한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국선변호인이 나서면 법정에 출석하지 않겠습니다.”

1996년 7월8일 12·12 쿠데타 내란수괴 혐의로 재판을 받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서 한 말이다. 당시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30부(재판장 김영일)는 1996년 7월4일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변호인들이 법정에 나오지 않자 국선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진행했다. 이어 1996년 7월8일 “(재판부가) 유죄의 결론을 가지고 형식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며 사선변호인들이 실제 총사퇴하자 두 전직 대통령도 덩달아 ‘재판 거부’를 선언하고 실제 이날 오후부터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제인치’ 등이 거론되자 두 전직 대통령은 그다음에 열린 1996년 7월11일 재판에 출석했다. 국선변호인이 끝까지 맡았던 결심에서 전 전 대통령은 “과거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적인 재판이 본인에게 끝이 나길 바랍니다”라는 최후진술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도 지난 10월16일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법정 발언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혀졌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변호인들이 일주일에 두번씩 재판을 하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도 구속만기로 피고인들을 석방시켜 놓고 재판을 하려는 술수가 밑에 깔려 있음은 누구나 다 짐작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법치’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억지주장을 가급적 들어준 것인데, 이제 와서 재판부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판결의 공정성·신뢰성에 흠집을 내려는 얕은 ‘정치공세’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한마디로 사법정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이러한 잔꾀를 부리기 전에 진심으로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이 지은 죄과를 조금이라도 더는 것이다.” 1996년 7월9일치 <한겨레> 사설은 2017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죽여주세요”

달라진 게 있다면 ‘공범’들의 대응이다. 1996년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함께 재판에 나오지 않거나 국선변호인을 비판하는 등 법정에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재판 거부’의 뜻을 밝힌 박 전 대통령과 달리 그의 ‘40년 지기’ 최순실씨는 ‘법정 투쟁’을 성실히 이어나갔다. 11월24일 오후 3시25분께 재판이 휴정하자 최씨는 “못 참겠다. 죽여주세요. 빨리 사형시키란 말이에요. 빨리 사형으로 죽이라고요. 더 살고 싶지도 않아”라며 울부짖다 휠체어에 실려 나가기도 했다. 최씨의 갑작스러운 대성통곡에 재판부는 이날 재판을 일찍 마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일 다시 재판에 나온 최씨는 고형곤 검사를 향해 “저를 조사할 때 그렇게 자신이 있었으면 왜 태블릿피시를 안 보여주셨냐”고 쏘아대는 등 자신의 페이스를 다시 찾은 모습이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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