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0일 서울 코엑스 전시장에서 열린 직거래 웨딩박람회 ''제48회 웨덱스코리아''에서 예비부부 등 참가자들이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노아무개씨는 2009년 ㄷ웨딩회사에 웨딩플래너로 입사했다. 주중엔 서울 강남구의 회사 사무실에서 아침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했고, 출근이 늦으면 지각비를 물었다. 업무 특성상 외근이 잦았지만, 이때도 회사 지문체크 시스템에 퇴근보고를 할 정도로 근태가 엄격하게 관리됐다. 회사는 매달 직급에 따라 매출액도 정해줬는데,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면 수당이 깎이기도 했다. 회사는 또 노씨가 계약 기간 동안 동종업계에서 일할 수 없고, 퇴직 시엔 모든 업무를 회사에 인계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가 2014년 12월 재정악화로 문을 닫자 노씨 등 웨딩플래너 23명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상대로 체당금(사업주가 도산한 경우 국가가 대신 주는 퇴직금과 임금 일부) 확인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씨 등은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노씨 등이 입사 때 날인한 ‘관리계약서’엔 “(회사와 사이엔) 근로기준법 및 기타 관련 법률상 근로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돼 있었다.
법원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윤경아)는 노씨 등이 낸 체당금 지급대상 부적격처분 취소소송에서 “노씨 등은 회사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먼저 재판부는 회사가 ‘플래너 관리계약’을 맺고 소속 웨딩플래너들의 근무시간과 근무 태도 등을 엄격하게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웨딩플래너들은 사무실 컴퓨터에 설치된 업무관리 프로그램에 매일의 스케쥴과 업무 내용을 기재했고 이 내용은 실?국장에게 자동으로 보고됐다”며 “노씨 등은 회사에서 지정한 근무장소와 근무시간에 구속받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노씨 등이 독립적으로 컨설팅이나 웨딩상품 판매를 할 수 없었다는 점도 짚었다. 재판부는 “웨딩플래너들은 회사가 지정한 협력업체만을 이용해야 했고, 협력업체가 아닌 업체와 거래할 땐 판매수당에서 5~10만원이 페널티로 공제되기도 했다”고 했다. 또 웨딩상품 판매금액 역시 회사가 정한 금액표에 따라 결정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노씨 등에게 기준금액을 어느 정도 변경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었다고 해서 독립적인 사업을 한다고 볼 정도의 가격 결정권한을 가졌던 건 아니다”고 했다.
노씨 등이 매달 직급에 따라 받은 기본수당은 일률적으로 지급된 점에서 근로 제공에 대한 대가인 급여에 해당하고, 판매수당 역시 성과급 형태로 지급된 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회사는 또 “웨딩플래너들은 연봉계약을 맺은 다른팀 직원들과 달리 관리계약을 맺었고, 4대 보험에서 회사 근로자로 가입돼 있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사실상 임의로 정한 사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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