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거리를 걷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유 아 소 뷰티풀!”(You are so beautiful!)
지난 10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을 걷던 여성 서아무개(22)씨는 길에서 뜬금없이 ‘외모 칭찬’을 들었다. 술에 취한 외국인 남성 무리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서씨가 어색하게 웃으며 지나가려 하자, 남성 무리는 서씨를 향해 웃으며 휘파람을 불고 30초가량 따라다녔다. 겁이 난 서씨는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직장인 이아무개(25)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 7월 저녁 이태원역 주변을 걷던 이씨는 ‘외모 칭찬’을 서로 다른 남성 무리에게 두 번이나 들었다. 한 무리 속 남성은 짧은 치마를 입은 이씨에게 “옷이 멋지다”며 영어로 추파를 던졌고, 다른 무리의 남성은 서툰 한국어로 “다리가 예쁘다”고 외쳤다. 이씨는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유흥가 등지에서 지나가는 여성에게 갑자기 외모 칭찬을 하는 식의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 성희롱을 하는 외국인 남성들이 늘어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캣콜링은 길을 지나던 여성의 외모를 갑작스럽게 칭찬하거나 노골적으로 응시하는 성희롱이다. 해외에선 사회문제까지 되고 있는 성희롱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여성들이 성희롱을 당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그려낸 그래픽노블 ‘악어 프로젝트’(2016) 표지. 푸른지식 제공
연말 모임 등이 잦은 최근 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캣콜링’ 경험담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태원에서 여러 나라 남자들이 단체로 캣콜링한다”, “이태원 지나서 녹사평길 걸어오는데 외국 남자들이 또 캣콜링해서 짜증났다” 등의 글을 올렸다.
서구권에서는 캣콜링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 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처벌 규정이 모호하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41항을 보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거나 지켜보는 행동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캣콜링 성희롱은 ‘불쾌하긴 하지만 신고까지 할 정도인지 싶은’ 수준에 머물 때가 많아 신고 자체가 적은 편이다. 사건화됐을 때 성희롱을 입증할 수 있는 방안이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용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말로 이뤄진 길거리 성희롱에 대한 신고를 받거나 처벌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월 프랑스의 마를렌 시아파 성평등 장관은 내년 표결을 목표로 캣콜링을 처벌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시아파 장관은 처벌 가능한 캣콜링으로 ‘낯선 남성이 갑자기 여성의 얼굴 10~20cm 안쪽으로 다가와 말하는 것’, ‘거리에서 위협적으로 계속 쫓아오는 것’, ‘연락처를 수차례 반복해서 물어보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벨기에에서는 2014년 거리 성희롱 금지법이 통과되었고, 포르투갈과 페루도 관련 법안을 제정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