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쪽에 433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1심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27일 항소심 마지막 재판에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는 그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심리로 이날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성공한 기업인이 될 수 있다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날 미리 마련해온 에이(A)4 용지 원고에 의지해 9분간 법정 마지막 진술을 이어갔다. 이 부회장은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오로지 제 실력과 제 노력으로 회사를 더 단단하고 강하게 더 가치 있게 만들어서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는 것이 제 인생의 꿈이자 기업인으로서의 목표였다”며 “이는 제가 못해내면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도와준다면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승승장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는 어리석지 않았다”며 부정청탁은 없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경영권 승계 등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제게 삼성 회장 타이틀을 달거나 계열사 지분 갖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고, 신경 쓸 필요도 없었던 일”이라며 “저는 외아들이라 다른 그룹과 달리 후계자 자리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어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다. 왜 뇌물까지 줘가며 승계를 위한 청탁을 하겠느냐”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어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및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1심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제 기업인으로서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지 생각하면 앞이 막막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모든 일이 저와 대통령의 독대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라며 “모든 법적 책임도 제가 지고 도덕적 비난도 제가 받겠다”고 했다. 이어 “여기 계신 분들은 그냥 회사 일을 열심히 하다가 이 자리에 서게 됐을 뿐”이라며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몸이 묶여 계신 최지성 실장님과 장충기 사장님껜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말을 맺었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는 이날 “정치권력과 함께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재벌의 특권이 더는 이 나라에서 통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박 특검은 이 사건을 “삼성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대가로 대통령과 측근에 뇌물을 건넨 정경유착 사건”으로 규정하고, “재벌의 위법한 경영권 승계에 경종을 울리고 재벌 총수와 정치권력 간의 검은 거래를 뇌물죄로 판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판단은 내년 2월5일 오후 2시에 나온다. 아래는 이 부회장 발언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이 재판을 위해서 애쓰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저 이재용은 우리 사회에 정말 빚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유복한 사람으로 자라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았고, 그리고 삼성이라는 글로벌 일류기업에서 능력 있고 헌신적인 선후배들과 같이 일할 수 있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보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구치소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으면서, 그리고 사회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이구나, 누린 사람이구나’ 하는 점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재판장님, 외람되지만 제가 갖고 있었던 인생의 꿈을 인생의 목표를 경영인으로서, 기업인으로서의 꿈을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 능력을 인정받아서 창업자이신 이병철 회장님이나 이건희 회장님같이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저는 재산 욕심, 지분 욕심, 자리 욕심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제 꿈은 삼성을 이어받아서 열심히 경영해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제가 받아온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우리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뿐이었습니다. 재벌 3세로는 태어났지만, 우리 회사를 오로지 제 실력과 제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더 강하게, 더 가치 있게 만들어서 저 자신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꿈이었고 기업인으로서의 목표였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저한테 달린 문제였습니다. 제가 잘해야 하는 것이고 제가 못해내면 누가 도와줘도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도와준다면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승승장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가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도와준다고 제가 성공한 기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제가 했겠습니까. 제가 왜 대통령께 청탁을 했겠습니다. 저는 이것만은 정말 억울합니다. 꼭 잘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경영 혁신, 신사업을 통해 우리 사회로부터는 물론이고 임직원으로부터도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병철의 손자나 이건희의 아들로서의 이재용이 아니라, 선대 못지않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기업인 이재용이 되고 싶었습니다. 삼성 회장 타이틀을 다는 것, 계열사 지분을 갖는 것은 저에게 별 의미가 없었고, 제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외아들입니다. 다른 그룹과 달리 후계자 자리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점에 있어선 회장님 와병 전이나 후나 달라진 점도 없습니다. 그리고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자신도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왜 뇌물까지 줘가며 승계를 위한 청탁을 하겠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재판장님.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꿈을 이루기 위해 누구의 힘 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요며칠 최후진술 때 무슨 말씀 드릴지 고민하다 보니,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제가 처한 상황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실타래가 꼬여도 너무 복잡하게 엉망으로 얽혀버렸습니다. 실망하신 국민들께 아직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직도 저를 질타하고 꾸짖는 분이 많은 거 같아서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바닥까지 떨어져 버린 저 이재용의 기업인으로서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지 생각하면 앞이 막막합니다. 엉망으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도 정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이 엉망인 실타래가 풀릴 수 있는 걸까’ 하는 불안감에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 모든 일이 다 제 불찰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저와 대통령의 독대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비록 제가 원해서 한 건 아니고 오라고 해서 간 것뿐이지만, 제가 할 일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게 제 책임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모든 법적 책임도 제가 지고 도덕적 비난도 제가 받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재판장님께 하나 청이 있습니다.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만일 재판부께서 저희가 어리석어서 죄가 된다고 판단하신다면, 저에게 벌을 내려주십시오. 제가 모든 책임을 져야 이 엉클어진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할 거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그냥 회사 일 열심히 하다가 이 자리에 서게 됐을 뿐입니다. 재판 받고 있는 제가 감히 드려도 되는 부탁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묶여 계신 최지성 실장님과 장충기 사장님에게는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주시길 정말 부탁드립니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면 두분은 풀어주시고, 그 벌을 제게 다 주십시오. 다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