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이순간]환하게 웃고 있는 문익환 목사와 아들…사진가를 찾습니다

등록 2017-12-29 10:24수정 2017-12-31 09:50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날 통일의집
‘늦봄’의 사진 속 사연을 찾습니다
문익환 목사의 장녀 문영금씨가 지난 9일 오후 박물관 개관을 위한 유품 이전 작업에 앞서 부모님이 쓰던 안방에서 부모님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에 어느 사진가가 마음먹고 집까지 찾아와 찍어준 귀한 사진인데 찍어준 이를 알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문익환 목사의 장녀 문영금씨가 지난 9일 오후 박물관 개관을 위한 유품 이전 작업에 앞서 부모님이 쓰던 안방에서 부모님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에 어느 사진가가 마음먹고 집까지 찾아와 찍어준 귀한 사진인데 찍어준 이를 알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커다란 흑백사진 속 노부부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늦봄’ 문익환 목사와 ‘봄길’ 박용길 장로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한 해쯤 전이었나, 어느 사진가가 마음먹고 집까지 찾아와 찍어줬어요. 귀한 사진인데 찍어준 이를 알 수 없어 안타깝지요.” 딸 문영금씨의 말이다.

지난 10일 찾아간 ‘통일의 집’은 이사 준비로 분주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라며 겨레의 하나됨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온 삶을 던진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가 1970년부터 살았던 곳이다. 박 장로는 1994년 1월18일 심장마비로 남편 문 목사가 갑작스레 세상을 뜬 뒤 “통일을 위한 토론과 교육의 장으로 쓰이길 바란다”며 이 집의 대문을 모든 이에게 열어주었다.

박용길 장로가 2007년 5월15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통일의 집 앞에서 환히 웃고 있다. 1994년 문 목사 별세 뒤 부인 박 장로는 통일을 위한 토론과 교육의 장으로 써달라며 이 집을 일반에 공개했다.
박용길 장로가 2007년 5월15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통일의 집 앞에서 환히 웃고 있다. 1994년 문 목사 별세 뒤 부인 박 장로는 통일을 위한 토론과 교육의 장으로 써달라며 이 집을 일반에 공개했다.

집 안 구석구석을 빼곡하게 채운 유품과 자료가 자그마치 2만5000여점에 이른다. 시대의 기록이기도 한 이 유품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정리가 절실하다. 건물에도 세월의 더께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집도, 그 안의 유품들도 그대로 두기에는 위험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527-30 단층집을 박물관으로 새롭게 꾸미고자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였다. 첫걸음은 일단 내딛지만 내년 6월1일 새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이들의 동행이 필요하다.

촬영 시기와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문익환 목사가 연설하고 있다. 딸 문영금씨는 아버지의 연로한 모습과 회색 두루마기를 단서로 방북 사건 이후로 추정했다.
촬영 시기와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문익환 목사가 연설하고 있다. 딸 문영금씨는 아버지의 연로한 모습과 회색 두루마기를 단서로 방북 사건 이후로 추정했다.

벽에 걸린 많은 사진 중 한 장에 눈길이 닿았다. 바람결에 성성한 백발이 흩날린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문익환 목사가 대중연설을 하는 모습이다. “언제쯤 촬영된 사진일까요?” 물으니, 딸 문영금씨와 조카 문영미씨가 머리를 맞댄다. “옷차림을 보면 방북 뒤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북에 다녀오신 뒤 한복을 자주 입으셨거든요. 어머니는 방북 뒤 아예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기 시작하셨고요.” 촬영 시기와 장소는 물론 누가 찍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 혼잣말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문영미 이한열기념관 학예연구실장이 말했다. 요즘에야 저작권을 중요하게 이야기하지만 ‘우리’라는 연대로 엄혹한 시대를 버텨온 그때에는 누구 사진인지 따질 겨를이 없었다고. 그때 광장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통일과 민주주의를 외쳤던 청년들의 머리카락도 이제 제법 희끗희끗해졌을 것이다. 사단법인 통일의 집은 당시를 기록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1976년 3월1일 `3·1 민주구국선언' 성명서를 작성해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뒤 수감된 문익환 목사가 22개월간의 투옥 중 입었던 수의. 가슴에 달린 `6943' 수인번호표가 선명하다.
1976년 3월1일 `3·1 민주구국선언' 성명서를 작성해 명동성당에서 발표한 뒤 수감된 문익환 목사가 22개월간의 투옥 중 입었던 수의. 가슴에 달린 `6943' 수인번호표가 선명하다.

문익환 목사와 아들 문성근씨가 활짝 웃고 있다. 문 목사의 딸 영금씨는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너무 없다며 아쉬워하던 동생이 사진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고 전했다. 이 사진은 필름이나 원본도 없이 인쇄본만 한장 남아 있다.
문익환 목사와 아들 문성근씨가 활짝 웃고 있다. 문 목사의 딸 영금씨는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너무 없다며 아쉬워하던 동생이 사진을 보고 무척 반가워했다”고 전했다. 이 사진은 필름이나 원본도 없이 인쇄본만 한장 남아 있다.

모처럼 사람들의 온기로 집이 데워졌다. 이웃의 뮤지컬 극단 ‘진동’ 팀과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청년들이 유품 옮기는 일을 거들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온 것이다. 고운 손길들이 한점 한점 조심스레 유품을 포장한다. 잠시 봉인되는 이 이야기들이 내년 다시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을까? 당신의 응답이 이들을 겨울잠에서 깨워줄 열쇠일지도 모른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