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979년 긴급조치 철폐 운동을 하다 열달간 복역했던 이범씨는 2014년 56살로 숨졌다. 하지만 고인은 4년째 국가와 ‘사후소송’ 중이다. 2005년 받은 생활지원금 3611만원 때문이다. 그 돈은 참여정부 시절 과거사 반성에 나선 국가가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건넨 생활안정금이었다. 이씨는 이와 별개로 2013년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이 다른 과거사 사건에서 “보상금을 받았으면 배상금은 따로 못 받는다”는 판단을 내놓아 좌절해야 했다. 불법구금과 부당한 복역의 대가가 3600만원이라는 말에 그는 기가 막혔다.
대법원이 판단의 근거로 삼은 법 조항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2항이다. 양승태 원장 시절 대법원은 2014년 소부 판결과 2015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를 근거로 국가에 ‘면책권’을 줬다. 민주화운동 관련자가 보상금이나 생활지원금을 받았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급심에서 인정해오던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도 부정했다. 법조계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나왔고, 당시 고영한·이상훈 대법관 등이 “유죄판결을 전제로 하는 보상과 재심 무죄 뒤 배상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득이 높거나 공직에 있어서 지원금 등을 받지 못했던 이들은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되고, 경제적 여유가 없어 지원금(최대 5000만원)을 받았던 이들은 배상 청구를 못 하는 역차별 문제도 지적됐다.
일선 판사 중에서도 대법원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이씨 사건을 포함해 모두 6건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대법원 판단의 근거가 된 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가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2018년 1월 현재 계류된 관련 헌법소원도 29건에 이른다. 하지만 헌재는 4년째 감감무소식이다. 그사이 이씨는 숨을 거뒀다. 부인 김철미씨는 “(남편이) 고문 후유증으로 잠을 설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헌재가 조속히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했다.
1980년 사북항쟁 주도자로 찍혀 2년간 수감됐던 신경(76)씨도 3200만원 ‘생활지원금의 덫’에 빠져 있다. 신씨는 “‘노동운동 주동자’라는 낙인 때문에 일용직을 전전하다 생활고 때문에 받은 지원금이 발목을 잡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며 선고를 미루는 하급심도 있다. 1975년 유신철폐 운동인 ‘가톨릭 전국학생연맹 사건’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소송도 2015년 4월 이후 멈췄다. 지금으로선 패소가 명백하니, 헌재 결정 이후로 재판을 미루자는 것이다. 서중희 변호사는 “연로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살필 곳은 현재로선 헌재밖에 없다”고 말했다. 헌재 관계자는 “지난해 탄핵 등으로 심리가 늦어졌다. 재판부가 새로 구성된 만큼,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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