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일 정의당 대구시당과 광주시당이 대구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방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 대구시당
지난해 5월 광주광역시 서구의회 의원 6명은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사에서 짝을 지어준 일반인 11명과 함께 8박10일 동안 스페인·프랑스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들은 ‘공무국외연수 계획’에서 연수 목적을 ‘복지행정과 도시재생 선진지를 방문한 뒤 정책 개발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계획에 있던 쓰레기 소각 발전공장(스페인 마드리드)은 방문하지 않았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 일정엔 들어 있지 않은 탓이다.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국외연수는 해묵은 논란이지만, 남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 ‘세금으로 놀러 가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특정 정당의 지역정치 독점으로 견제와 감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광주 서구의회 의원 13명 중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소속이 10명이다.
지난해 6월 더불어민주당 김혜정 대구시의원은 ‘대구시 청소년 노동인권 보호 및 증진 조례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조례안은 아르바이트 등 청소년 노동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정기적으로 실태조사 등을 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례안은 시의회 80% 이상을 차지하는 자유한국당 시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반기업적이고 사상 교육을 하려는 조례’라는 이유였다. 김혜정 시의원은 “지금 이런 시의회 구성으로는 다시 조례안을 상정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노동인권 조례는 경기, 광주, 전남, 제주 등 전국 광역·기초단체 31곳에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대구와 경북에서는 한국당의 반대로 구미를 빼고는 한 곳도 제정된 곳이 없다.
한 정당이 지방의회 절반 이상을 장악하면 거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지방의회의 대부분 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으로 이뤄진다.
지금까지 기초의원 선거는 대부분 2인 선거구 위주로 치러졌다. 4년 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전국 기초의원 지역구 선거구는 모두 1034개였다. 이 중에서 2인 선거구가 59.2%로 가장 많았고, 3인과 4인 선거구는 각각 38.0%와 2.8%에 불과했다. 그 결과 당시 큰 정당이었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전국 전체 기초의원 지역구(시·군·구) 당선자의 47.9%와 39.3%를 나눠 가졌다. 반면 당시 통합진보당은 1.2%, 정의당은 0.4%, 노동당은 0.2%의 당선자를 얻는 데 그쳤다. 특히 새누리당은 대구, 경북, 울산, 경남에서 기초의원 지역구 당선자 3분의 2 이상을 쓸어갔다. 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주, 전남, 전북에서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대구와 광주에서는 지역 정치인들이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고 줄을 서는 경향이 강하다. 2인 선거구 중심의 기초의원 선거는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팀장은 “지방의회를 특정 정당이 장악해버리면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므로 의정활동을 할 필요도,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어진다. 지방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그 피해는 대구시의회 청소년 노동인권 조례 부결처럼 사회적 약자나 시민이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정의당 광주시당은 광주 전체 5개 구 의원 65명이 지난 3년간 구청장이나 국장 등을 상대로 구의회에서 했던 구정질문은 112회로, 구의원 한명이 3년간 평균 1.7회 구정질문을 했다고 밝혔다. 광주 전체 구의원의 21%(14명)는 임기 중 한 차례도 구정질문을 하지 않았다. 의정활동이 공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싹쓸이 현상이 가장 심한 대구와 광주에서 ‘기초의원 4인 선거구 도입’ 등에 대한 목소리가 특히 높다. 정의당 대구시당과 광주시당은 지난해 11월부터 함께 ‘달빛동맹’을 맺고 지방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달구벌’로 불리는 대구와 ‘빛고을’로 불리는 광주가 힘을 합쳤다.
정의당 장태수 대구시당 위원장과 장화동 광주시당 위원장은 지난해 11월2일과 11월6일 함께 대구시의회와 광주시의회를 번갈아 방문해 기초의원 4인 선거구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정의당 대구시당과 광주시당은 기초의원 3~5인 선거구 전환뿐만 아니라 광역의원 전면 비례대표 또는 득표율과 의석배분을 일치시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광역·기초단체장 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등도 주장하고 있다.
장태수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대구는 산업화를 대표하는 도시이며 광주는 민주화를 대표하는 도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일당 독점이 가장 심한 곳이다. 지방의회 안에 다양한 세력이 함께 존재해야 경제와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는 선거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장수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도 “대구, 광주처럼 한 정당 독점이 강한 지역에서 기초의원 2인 선거구는 지배정당이 지방의회를 계속 장악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초의원 선거는 3인이나 4인 선거구 중심으로 치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민주당 쪽은 아직 구체적으로 당론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윤관석 의원은 단체장 결선투표제, 광역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 5인 선거구제 도입 등에 대해서 “따로 당론이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도 반대하는 뜻의 ‘일단 유보’ 입장을 내놨다. 6월 지방선거에서 선거 규칙을 바꾸는 것은 반대하며, 논의하더라도 지방선거 이후 논의하기로 의원들의 뜻이 모였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국민의당은 다당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이 당장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6일 정의당 대구시당과 광주시당이 대구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방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 대구시당
여러가지 지방선거제도 개혁방안 중에서 기초의원 4인 선거구 도입이나 확대 목소리가 특히 높은 것은 국회가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도입이나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초의원 2인 선거구를 줄이고 4인 선거구를 늘리는 것은 각 광역시·도와 시·도의회에서 조례 개정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영남과 호남 지역에서 기초의원 4인 선거구 확대나 도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기초의원 선거구를 정할 때 시·도지사와 시·도의회의 영향력이 큰데 이를 모두 한 정당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 다수당인 한국당 소속은 4인 선거구 확대나 도입에 부정적이다. 광주 다수당인 민주당은 이에 미온적인 태도다.
4인 선거구 확대와 관련해 수도권과 충청권 등 한 당으로의 쏠림이 덜한 지역에서도 민주당은 소극적, 한국당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몫을 떼 작은 정당에 의석을 내줘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전국에서 지금까지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한 서울시, 울산시, 충남도만 봐도 이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온다. 서울을 빼고는 모두 2인 선거구가 가장 많은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자치구의원(구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2인 선거구를 크게 줄이고 4인 선거구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각 정당에 전달했다.
이 방안에 대해 서울시의회 한국당은 반대하고 민주당은 공식 의견을 밝히지 않았으나, 반대 의견이 다수로 전해졌다. 한국당과 민주당이 부정적인 핵심 이유는 4인 선거구 확대가 이들 양대 정당의 의석을 축소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을 최종적으로 광역의회가 결정하지만, 선거구획정위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또 2006년 지방선거에서 중선거구제를 도입한 취지가 소수정당과 정치신인을 위한 것이므로 3~4인 선거구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우 김규남 송경화 정유경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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