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전남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 피해자인 서아무개(54)씨는 2014년 염전 주인을 상대로 체불임금을 청구하면서 법원에 소송 비용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은 인지대와 송달료는 지원하면서도 핵심적인 변호사 수임료는 서씨가 부담하라고 했다. 지적장애가 있는데다 갈 곳이 없어 복지시설에 머물던 서씨로선 수백만원에 이르는 소송 비용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는 광주지법에 항고한 끝에야 변호사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서씨 사례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문제의식이 있는 장애인단체 등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법조계에선 경제적 약자를 위해 재판 비용과 변호사 비용 등을 지원하는 소송구조제도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을 보면, 2016년 1심 민사사건에선 신청자의 절반(54.3%)만 소송 비용을 지원받았다. 인용률이 78.6%에 이르던 2008년에 견줘 8년째 하락세다.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소송구조 요청은 급증하다 보니, 기준이 점점 엄격해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연금수급자 및 한부모 가정 등은 경제력 부족이 인정돼 우선적인 지원 대상이지만, 최근엔 이들도 지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최아무개(44)씨는 2016년 가출한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면서 소송구조를 신청했지만, 법원은 8개월 만에 “이유 없다”고 기각했다. 최씨로서는 지원도 못 받고 정작 자신의 이혼소송은 1년 뒤에야 시작하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린 셈이다.
난민에게는 지원이 더 각박하다. 난민사건이 몰리는 서울행정법원의 소송구조 인용률은 2008년 65.9%에서 2016년 33.4%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0월부터 통역료는 일부 지원되지만 변호사 비용은 대다수가 지원받지 못한다. 김연주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는 통역사와 변호사를 통해 의사를 정확히 전하지 않으면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하기 쉽다. 재판에서 제대로 판단받기 위해서라도 소송비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했다.
소송구조 기준 보완도 시급하다. 민사소송법은 자금능력이 부족하거나 ‘패소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구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밖에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재판부마다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최정규 변호사는 “법원이 연봉 1억원이 넘는 사람은 구조하면서 정작 재판 비용 지원이 절실한 사람에겐 엄격하게 접근하는 사례도 있다. 소수자를 배려하는 일관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법원도 정밀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고심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전담재판부 4곳에서 소송구조 사건을 도맡아 심사의 일관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홍보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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