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23일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석달째 ‘국정농단’ 재판을 보이콧 중인 박근혜(66) 전 대통령이 증인신청을 대거 철회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증거의견서를 재판부에 직접 제출했다. 이에 따라 김승연·허창수·구본무·조양호·신동빈 회장 등 재벌 총수들에 대한 증인신문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농단’ 재판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국정원 특활비 상납’ 재판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11일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일부 증거를 재판 증거로 삼는 데 동의하겠다는 의견서를 피고인 본인이 직접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동의한 서류는 김승연 한화그룹, 구본무 엘지(LG) 회장, 허창수 지에스(GS)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소진세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등의 검찰 진술조서다. 형사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진술증거에 대해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진술자들이 직접 법정에 나와 진술해야 한다.
유영하 변호인 등 사선변호인단은 이같은 서류를 증거로 삼는데 동의하지 않은 상태로 지난해 10월16일 총사임했다. 피고인이 출석해 동의하지 않은 증거의 경우,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변호인 뜻만으로 동의 여부를 번복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들을 모두 증인으로 부를 계획이었다. 검찰이 증인신청을 철회하면, 김 회장 등은 법정 증언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사선변호인단이 신청해둔 증인 6명도 법정에 부를 필요가 없다는 뜻을 함께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정농단’ 재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이날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던 김승연·구본무·허창수 회장 등이 잇달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재판 일정이 차질을 빚은 바 있다. 또 박 전 대통령 스스로 ‘정치보복’으로 규정한 ‘국정농단’ 재판을 일찌감치 마무리하고 ‘국정원 특활비 재판’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벌 총수들이 검찰 진술 이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법정에서 내놓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굳이 이 재판으로 재벌 총수들을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박 전 대통령이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6일 구속영장 추가 발부에 반발해 재판 보이콧을 선언하며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 관용이 있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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