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한국 직장 내 강간 문화와 여성혐오 철폐 촉구 기자회견에서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직장 내 성희롱 발언 사례들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의붓아버지가 10대 딸과 딸 친구 3명에게 ‘다이어트 주사’라고 속여 약물을 투여하고 정신을 잃은 사이 강제추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딸의 학교 쪽이 성폭력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의붓아버지의 단순한 괴롭힘 정도로 판단하고, 해운대 반여지구대에서 학교에 경찰차를 타고 제복을 입은 채로 출동해 피해자 진술을 듣게 했다. 고민 끝에 피해 사실을 알린 학생들의 신원은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성폭력협의회)는 해운대경찰서 여청팀을 포함해 지난해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한 ‘걸림돌’ 10건과 ‘특별걸림돌’ 1건을 선정해 22일 발표했다. 성폭력협의회는 2004년부터 해마다 전국 성폭력 사건을 모니터링해 피해자 인권 걸림돌 등을 선정한다.
걸림돌 사례에는 서울중앙지검 손아무개, 김아무개 검사도 이름이 올랐다. 이들은 가수 박아무개씨의 성폭력 의혹 사건 피해자가 무고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1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이자 무고 피고인에게 “연예인 박씨를 좋아한 것 아니냐”, “허리만 비틀면 성관계를 피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등의 질문을 했다. 성폭력협의회는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편견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담은 질문이었다”고 평가했다. 결혼이주여성인 친언니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형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서 옆방의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 판결한 제주지법 ㅈ판사 등도 걸림돌로 꼽혔다.
수사·재판 기관이 아닌 기관 가운데 선정하는 특별걸림돌에는 준강간 사건 뉴스를 다루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텔에서 함께 나오는 장면을 내보낸 <한국방송>(KBS)과 <전주방송>(JTV)이 꼽혔다. 성폭력협의회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하에 모텔에 출입하였다는 오해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 등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한 ‘디딤돌’도 6곳이 선정됐다. 디딤돌 시상식은 23일 서울 동작구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열린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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