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사 앞에서 주거빈민 지원단체들이 서울시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임재우 기자
지난 20일 새벽 서울 종로구 서울장여관을 뒤덮은 불길 속에는 ‘가난한 이웃들’이 있었다. 서울로 여행을 왔다가 변을 당한 박아무개(34)씨와 두 딸은 지난해 3월 거주지인 전남 장흥군에 생활비 긴급지원을 신청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았다고 한다. 종로의 한 양복점에서 일하는 박아무개(58)씨는 벌이가 일정치 않아 보증금 없이 한달 45만원인 이 여관 가장 안쪽 ‘달방’에서 3년을 살았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최아무개(53)씨도 여관에서 1년을 살았다. 이들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이들은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도 경보음도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쪽방’ ‘달방’ 등에서 사는 주거 빈민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가스버너로 라면을 끓이다 난 불에 60대 주민이 숨졌다. 돈의동 쪽방도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노후 건물이었다. 스프링클러·화재감지기 등 안전장치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보증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쪽방·달방에 사는 주거 빈민들은 화재 참사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호 바깥으로 밀려나 있었던 셈이다.
서울시는 기존 쪽방 건물을 임차해 보수한 뒤 기존 월세보다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저렴쪽방’ 사업, 서울주택공사로부터 공공주택을 매입해 쪽방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등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주거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은 300만~500만원의 보증금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저렴쪽방은 최대 5년의 단기 임대에 그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한국주택토지공사(LH)는 보증금 50만원에 임대주택을 제공하는데 서울시의 임대주택은 보증금이 지나치게 높다. 쪽방 주민의 59%가 기초생활수급자고 월수입이 50만원 미만인 사람이 78.4%에 이르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가 2016년 쪽방 주민을 위해 서울주택공사로부터 매입한 송파·양천구 등지의 임대주택 101곳 중 현재 35곳만 입주돼 있고 66곳은 비어 있다.
중앙정부 차원의 적극적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미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대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전국 실태조사를 통해 주거빈곤 현황을 파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쪽방민 대책을 서울시 등 지자체에만 맡겨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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