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조 대표자들과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유성기업 노조파괴 증거 추가 폭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현대차가 유성기업 노무관리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대기업 사옥 앞에서 노조파괴 개입행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회사 쪽이 선점한 집회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동자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대기업이 반대 집회를 차단할 목적으로 여는 ‘알박기 유령집회’에 제동을 건 첫 판결이라 눈길을 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서삼희 판사는 25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쌍용차 복직자 고동민(43)씨와 박제민(40) ‘박영진 열사추모사업회’ 간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16년 5월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현대차가 하청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파괴 공작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검찰은 현대차 쪽이 먼저 집회 신고를 했는데도 고씨 등이 ‘맞불집회’를 벌여 회사 쪽 집회를 방해했다고 봤다. 고씨 등은 ‘현대차 쪽이 다른 집회를 막기 위한 방어용 집회를 벌였다’고 맞섰다. 현대차 쪽이 1년 내내 회사 앞 인도와 도로를 독점해 집회신고를 한 뒤 근무시간에 경비담당자 등 직원과 용역을 동원했고, 집회 참여단체의 실체도 불분명하다는 게 고씨 주장이었다.
법원은 고씨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서 판사는 “집회의 자유가 갖는 헌법적 기능, 집시법의 입법 목적 등에 비춰보면 현대차 쪽 집회는 집회라기보다는 경비업무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현대차의 집회가) 같은 장소에서 이뤄진 다른 집회에 방해를 받는 성격의 집회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못박았다. 법원이 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다른 집회를 차단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대기업 ‘유령집회’의 실체를 인정하고, 집시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법원은 아울러 고씨가 ‘미신고 집회’를 벌이며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한 혐의 등도 무죄로 봤다. 서 판사는 고씨 쪽 기자회견이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집회는 비교적 평온하게 이뤄졌고, 공공의 안전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명백하게 초래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현소은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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