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9일 서울 구로구의 연희미용고 학생들이 교사 해고에 반발해 학교에 벽보를 붙여놨다. 사진 연희미용고 학생제공
가수 현아,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지민, 태형 등을 배출한 서울 성동구 ‘한국예술고등학교’는 폐교를 앞두고 있다. 올해 개교 31주년을 맞는 이 학교는 현재 남아있는 150여명의 학생들이 졸업하는 2019년 2월에 마지막 졸업식을 열 예정이다. 교사 ㄱ씨는 “남아있는 학생들 생각해서 마음을 다잡고 있지만 당장 올해부터 새 직업을 구해야 하는 판이라 집중이 쉽지 않다”며 “예체능계에서 나름 이름 있는 학교인데 이렇게 사라진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예고처럼 법인화 문턱을 넘지 못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학평)들이 줄줄이 폐교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구로구 연희미용고등학교는 학생들이 폐교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17년 기준 서울에 위치한 14개 학평에는 9096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이들 ‘학평’들도 한국예고나 연희미용고와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송민호, 크리스탈 등 예체능계 스타 여럿을 배출한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도 지난해 10월 신입생을 뽑지 않겠다고 공지했다가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결정을 철회했다.
‘학평’은 산업화 시절 저소득층 노동자나 자퇴생 등 청소년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공민학교·새마을 학교 등을 모태로 한다. 재단이 아닌 설립자 개인이 학교를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등 정규학교에 비해 느슨한 규제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벌어졌다. 연희미용고는 설립자가 교비를 사적으로 유용하는 등 불투명한 회계 운영으로 2011년 서울시교육청의 시정명령을 받았다. 2004년에는 서울의 한 학평 교장이 한 사람당 100만~800만원에 허위 졸업장을 팔다 구속되기도 했다.
이에 교육당국은 2007년 평생교육법을 개정했다. 학평의 설립주체를 법인으로 제한한 것이다. 설립자의 사유재산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학평을 교육의 테두리에 넣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법인화가 오히려 폐교의 빌미가 되고 있다. 법인 전환을 위해서는 5억원의 기본재산과 건물, 토지 등을 출연해야 하는데, 교육사업 의지가 없는 설립자나 그 후손들이 학교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 시내 학평 가운데 ‘법인화’에 성공한 곳은 서울자동차고 하나뿐이다.
결과적으로 ‘학평’에 다니던 학생들은 교육권을 침해 당하고, 교사들은 직업을 잃을 처지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법개정이 없는 이상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과 관계자는 “교육청은 기본적으로 학평의 법인화를 최대한 도우려는 입장”이라면서도 “상위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학평을 도울 방법이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숭희 서울대 교수(교육학)는 “국가가 과거 민간에 떠넘겼던 교육서비스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혼란”이라면서 “학평을 제대로 된 교육기관으로 정상화시키는 데 국가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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