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인 최순실씨가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강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알선수재 등 18가지 혐의사실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내린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3일 기소 15개월 만에 1심 판단을 받아든 최순실(62)씨는 유독 말이 없었다. 2016년 10월31일 독일에서 전격귀국해 대중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며 울먹이던 모습도, 그해 12월19일 첫 공판에서 “독일에서 올 때는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했는데, 이제 정확한 걸 밝혀야 할 것 같다”며 보여준 당당한 기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최씨는 오후 2시10분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재판부에 짧게 목례하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생년월일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예”라고 짧게 답한 것 말고는 재판 내내 별다른 말을 토해내지 않았다. 변호인들에게 귀엣말을 건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던 최씨는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과 공모관계에 대해 설명하자 피고인석 책상 위에 놓인 종이에 메모를 시작했다. 그는 재판이 한시간을 넘어가자 부쩍 지친 모습을 보였다. 왼손으로 턱이나 이마를 괴었고,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한숨을 쉬었다. 재판 2시간여만인 오후 4시8분께 재판부가 혐의에 대한 판단을 모두 마치고 양형이유를 밝히려 하자 변호인을 통해 피로감을 호소한 뒤 7분간 피고인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이날 최씨 모습은 그동안 국정농단 재판에서 보여준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최씨는 그간 매우 ‘적극적인’ 피고인이었다. 고영태씨, 케이스포츠재단 노승일 전 부장처럼 등 돌린 측근들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발언권을 십분 활용해 공격했고 때로는 법률용어를 동원하기도 했다. 장외여론전도 치열하게 펼쳤다. 이경재 변호사는 서울 서초동 정곡빌딩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몇차례 브리핑을 열고 ‘특검 강압수사’ 논란을 제기한 데 이어, 이 부회장 1·2심 선고 뒤에는 별도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5월23일 ‘40년지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법정에서 처음 조우했지만, 최씨 쪽만 짝사랑을 표했을 뿐이다. 첫공판에서 최씨가 “40년간 지켜본 대통령을 나오시게 한 제가 죄인”이라며 울먹일 때도 박 전 대통령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최씨는 꿋꿋하게 “(박 전 대통령에게) 젊은 사람들이 팝가수 좋아하는 듯한 애정관계가 성립됐다”, “죄 없는 분이 계셔서 죄송스럽다”며 “살을 에는 고통”을 호소했다. 방청석의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책임을 최씨에게 물으며 원망을 쏟아내거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최씨에게 표하다 여러 차례 퇴정당하기도 했다.
7월12일 정유라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1심 재판서 ‘깜짝 증언’하자 “제2의 장시호를 만들기 위한 일”이라며 격분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을 향해서는 “특검이 딸과 제 목줄로 잡고 흔들고 있다”, “검찰은 개혁대상이다” 등 날선 언어를 내뱉는가 하면, “1평짜리 독방에서 너무 비참하다. 고문이 있었다면 웜비어 같은 사망상태에 이를 정도”, “(차라리) 사형 시켜달라”고 소리지르며 수감생활의 고충을 토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14일 검찰이 징역 25년을 구형하자 비명소리를 내며 격분한 끝에 자신의 마지막 재판에서 ‘조기퇴정’하기도 했다.
반면 평소 차분한 모습이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검찰 구형량과 같은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안 전 수석은 줄곧 이어지는 ‘유죄’ 판단에 인상을 찌푸리고 수차례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천장을 바라봤다. 재판 시작 15분전 출석해 변호사와 웃는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던 신 회장 역시 실형 선고를 받아든 뒤에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이날 선고공판은 ‘국정농단’ 최장기 심리 사건답게, 선고에도 142분이나 걸렸다. 재판장인 김세윤 부장판사는 증거 판단이나 비교적 단순한 사건은 간단하게 갈무리하며 속도감을 냈지만, 사건수가 6개인데다가 최씨 혐의만 20개에 달하는 터라 재판은 오후 4시32분에야 끝났다. 김세윤 부장판사도 중간중간 목이 메인 듯 물을 마시거나 얕은 한숨을 토해냈다. 재판부는 오후 4시23분께 재판을 모두 마쳤지만, 항소방법과 항소기간을 알려주지 않는 바람에 6분만에 법정에 나와 피고인들을 다시 부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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