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출가 이윤택 씨가 예술감독을 맡은 '연극단거리패' 해체로 폐쇄수순을 밟고 있는 서울 종로구 '연희단거리패 30 스튜디오'가 22일 오후 적막감에 휩싸여있다. 연합뉴스
검찰발 ‘미투’ 캠페인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피해자들의 증언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면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연극계에서 수십년간 ‘황제’로 군림했던 이윤택씨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배우 조민기씨 등의 구체적인 가해 사례가 공개되자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손해배상을 요청하는 청원에 ‘동의’가 쇄도하는 상황이다.
이윤택씨는 오랜 기간 연극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물 연출가로 개별 배우들의 배역과 출연 여부뿐 아니라 직업적 미래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법조계에선 연극단 감독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성폭행했다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을 했다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 적용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조씨도 ‘교수’라는 우월적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 법 적용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들이 피해자의 거부 의사 표시나 저항이 있었는데도 범죄를 저질렀다면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씨에게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 사례 11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처벌할 수 없다. 피해 사례가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전부 폐지(2013년 6월)되기 이전인 2001년에서 2010년에 걸쳐 있어서다. 이씨의 성폭행 또는 성추행이 일어날 당시 관련 법률에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와 처벌이 가능했고, 고소할 수 있는 기간도 6개월에 불과했다.
지난 19일 사죄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씨가 자꾸 법을 들먹이자 법조계에서 “지금까지 나온 사례만으론 처벌이 불가하다는 변호사의 사전 조언을 받은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조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씨가 2010년 3월부터 모교인 청주대 예술학부 강단에 선 점을 고려하면 그 이후 친고죄가 폐지된 2013년 6월 이전에 이뤄진 범행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다.
다만 성폭력 범죄의 친고죄가 전면 폐지된 2013년 6월19일 이후 이씨나 조씨 또는 앞으로 폭로될 또 다른 가해자의 성폭력 범죄가 드러난다면 이는 고소가 없어도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 또 친고죄 폐지 이전에 벌어진 범죄라도 당시 피해자가 미성년자였으면 19살 성년이 된 날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하는 특례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경남경찰청이 이날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에 대해 수사 방침을 밝힌 것도 피해자들이 미성년자이던 2007~2010년에 이뤄진 범행이라는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으로 피해를 구제받을 길도 현재로서는 막혀 있다. 이들 피해자는 성폭력 범죄라는 불법행위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3년 안에 소송을 냈어야 구제가 가능하다. 민법에 정해져 있는 ‘소멸시효’가 3년이기 때문인데,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 사례는 이 기간을 이미 넘긴 상태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일단 적극적인 반응을 내놨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를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최근에는 우월적 지위, 즉 권력을 이용해서 자행하는 성적 폭력이 잇달아 공개되고 있다”며 “저항하기 어려운 약자에게 권력을 악용해 폭력을 자행하는 경우는 가중처벌해야 옳다. 혹시 법의 미비가 있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가중처벌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중처벌을 위한 법률이 제정 또는 개정되더라도 현행 헌법(제13조)상 소급 적용은 불가능하다.
강희철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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