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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발 쉬고 싶다” 연중무휴 쇼핑몰 매니저의 비극

등록 2018-02-23 05:01수정 2018-02-26 09:30

스타필드 고양점 아동복 매장 매니저
창고서 자살기도 뒤 발견…숨 거둬
장사 안돼 설날 직원 월급도 못줘
신세계-브랜드 본사, 서로 “책임 없어”
“한달 하루, 명절만이라도 쉴 수 있길”
연중무휴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점의 내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연중무휴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점의 내부 전경.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19일 아침 스타필드 고양점 재고창고에서 한 아동복 브랜드의 점포 매니저이자 업주인 ㄱ(50)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ㄱ씨는 하루 동안 간신히 호흡만 이어오다 20일 낮 결국 세상을 떴다. ㄱ씨와 함께 스타필드에서 근무하는 다른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ㄱ씨가 쉬지 못해서 많이 힘들어했다. 집이 아닌 재고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건 결국 스타필드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쇼핑객의 편의를 위해 ‘연중무휴’ 밝혀둔 아웃렛 불빛 뒤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몸이라도 편했으면 버틸 수 있었을까” ㄱ씨는 지난해 8월24일 스타필드 고양점이 영업을 시작할 때 직원 1명과 함께 아동복 매장의 문을 열었다. 스타필드가 ‘연중무휴’ 영업 방침을 세운 탓에 직원을 두지 않을 순 없었다. 직원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 5일, 하루 8시간씩 근무했다. ㄱ씨는 매일 매장에 나왔다. 지난해 8월 말부터 숨을 거두기까지 6개월여 동안 ㄱ씨가 쉰 날은 3일 남짓이라고 그의 동료들은 전했다. 그나마 이 3일도 온전한 휴식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혼자 매장에 남은 직원은 계속 ㄱ씨에게 전화를 했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초반 2~3개월 ‘오픈발’이 지나간 뒤엔 수입도 줄었다. 인건비가 문제였다. 주변에서 직원을 자르라는 권유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직원을 써도 매일 출근할 수밖에 없던 참이었다.

스타필드 고양점에서는 매일 방송이 나온다. “우리 매장은 365일 연중무휴로 운영됩니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쇼핑할 수 있습니다.” ㄱ씨의 동료들은 그가 이 방송을 들으며 한숨을 내쉬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ㄱ씨의 동료들은 매일 휴대전화로 ‘복합쇼핑몰 의무휴업’ 관련 기사를 검색하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리고 ㄱ씨가 “매출 하루 이틀 빠져도 좋으니까 다 같이 마음 편히 쉬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매장을 쥐고 있는 것 자체가 ㄱ씨에겐 부담이었다. 하루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일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올 들어서는 직원 월급을 한푼도 못 줬다. 숨지기 직전 주말, ㄱ씨는 “설날에도 직원 월급을 못 줬다. 월요일에 은행에 가서 비상금으로 묶어둔 5천만원을 헐어야 할 것 같다”고 지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은행에 간다던 월요일에 ㄱ씨는 매장 창고에 갔고 숨을 거뒀다. ㄱ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스타필드 입점 점포 매니저는 “몸이라도 덜 피곤했으면 ㄱ씨가 버틸 수 있었을까요”라는 말만 되뇌었다.

연중무휴 복합쇼핑몰, 손님들에겐 환영받지만… 스타필드 고양점은 신세계가 내놓은 ‘연중무휴 복합쇼핑몰’이다. 보통 백화점은 월 1회씩 쉬고, 아웃렛들도 최소한 일년에 이틀, 설과 추석 당일은 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스타필드 고양점과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 위치한 신세계 파미에스트리트, 롯데몰(수원·김포공항·은평점), 현대시티아울렛 가산점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면세점과 일부 중소 아웃렛도 연중무휴다.

ㄱ씨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매니저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스타필드를 운영하는 신세계 쪽과 ㄱ씨가 운영하던 아동복 브랜드는 서로에게 책임만 떠넘기는 모습이다. 신세계 쪽은 “우리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사업자”라며 “교대근무와 휴무일 지정 등 매장 운영의 구체적인 내용은 물품 본사와 매니저들 사이 계약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ㄱ씨 매장의 브랜드 본사 쪽은 “백화점이 문을 열면 상식적으로 그 안에 있는 매장이 문을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스타필드는 365일 문을 열어야 하다 보니 매니저들이 직원을 두고 번갈아 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책임지는 쪽은 없고 고통은 커져만 간다. 스타필드에서 일하는 한 매니저는 “오픈 준비가 조금만 늦어져도 스타필드 쪽에서 매니저들의 단톡방으로 경고 공지를 띄운다”며 “지각만 해도 이 정도인데 아예 문을 안 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니저는 “올해부터 신세계가 주 35시간 노동방침을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우리는 365일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스타필드에서 일하는 매니저들은 백화점처럼 한달에 한번, 혹은 설과 추석 명절 당일만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과 이달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명절에 가족과 보내고 싶다’며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일을 만들어 달라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100대 정책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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