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연극계 성폭력 폭로 사태 보도하며 피해자 상처·공포·자책감 헤집는 언론
연극계 피해자 처한 복잡한 관계와 심경 헤아리고 2·3차 가해 중단해야
연극계 성폭력 폭로 사태 보도하며 피해자 상처·공포·자책감 헤집는 언론
연극계 피해자 처한 복잡한 관계와 심경 헤아리고 2·3차 가해 중단해야
연극연출가 이윤택·오태석, 연극배우 이명행, 배우이자 청주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조민기, 경남 김해에서 극단을 운영하며, 연극인의 꿈을 키우던 청소년들을 지도하던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 등의 성추행·성폭행 의혹이 불거졌다. 지금 진행 중인 ‘미투’(#Me_too)의 기세로 볼 때 물밀듯한 추가 폭로가 예상된다.
연극인들은 폭로자가 폭로의 결과를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 2월13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실명 폭로가 있던 다음날,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 송경화 연출가, 김태희 연극평론가, 배우 홍예원씨 등 연극인 10여 명이 모여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연극인회의’를 꾸렸다. 2월21일 이 모임의 취지에 동의하는 연극인 100여 명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극단 ‘고래’ 지하연습실에 모여 향후 대응을 논의했고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을 결성했다. ‘연극인 미투’ 운동 한가운데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는 연극인 가운데 한 명인 김태희 연극평론가가 ‘연극인 미투’ 선언을 마주하고 있는 언론과 사회에 글을 보내왔다. _편집자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다들 한번쯤 들어봤을 추문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으로 실체를 드러냈을 때, 우리들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질수록 우리의 담담함은 경악으로 바뀌어갔다. 피해자들이 겪은 성폭력은 상식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지금까지 윤곽이 드러난 피해 규모만 해도 엄청난데, 아직 드러나지 않은 피해까지 포함하면 전례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무수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는 상황, 그야말로 연극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돈과 권력이 떠받친 성폭력
누군가는 예술계 곳곳에서 ‘미투 선언’이 이어지는 동안 유난히 잠잠한 연극계가 이상하다고 했다. 연극계가 다른 예술계에 비해 성폭력 발생 확률이 낮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가해자의 범죄를 손쉽게 은폐하고 피해자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연극계만의 구조적 특징 때문이다.
연극은 오랫동안 도제식 교육 시스템을 기반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극단’이라는 폐쇄적 공동체를 중심으로 창작 환경을 유지해 왔다. 자연스럽게 선후배 기강이 강조되었고, 극단 대표나 연출가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위계질서가 만들어졌다. 명목상 이 위계질서는 선배나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단체를 위한 협동심에 기대고 있으나, 실상은 예술 활동을 위한 지원이 대표나 연출가 개인에게 집중되기에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려면 많은 것이 필요하다. 여기엔 극장과 연습실 같은 하드웨어부터 작가, 연출가, 배우, 다양한 분야의 스태프 등 인적 구성원까지 포함된다. 문제는 이를 구성하는 데 드는 재원이 상당 부분 지원금에서 비롯되고, 지원금 분배는 극단 대표의 역량에 달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연출가 중심의 제작 환경에 지원금의 분배권까지 더해지면 대표 개인은 막강한 권력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다보니 위계 구조 가장 아래에 속하는 어린 배우나 스태프들이 제작 시스템을 거머쥐고 있는 권력자와 기존 위계질서에 반기를 들기란 어렵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곧바로 캐스팅 불이익 같은 보복이 돌아오고, 극단적으로는 단체에서 탈퇴하고 연극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에 예술지상주의가 더해지면 피해자들에게 예술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강요한다.
이윤택 연출가보다 먼저 드러난 것은 이명행 배우의 성폭력 사건이었다. 이명행 배우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2009)에 출연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스테디 레인>(2011), <프라이드>(2014)를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평가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며 그야말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피해자 사진 무단 보도하는 언론
이름을 얻은 덕분에 그의 성폭력 범죄는 은폐되고 있었다. 이명행 배우는 공공연히 성폭력을 저질렀고, 심지어 특정 극장에서는 출연금지 조처까지 내려졌지만, (이 사실을 모른 채) 그를 아껴주는 많은 팬 덕분에 계속 공연할 수 있었다. 힘없는 후배들이 당했던 성폭력은 그의 짓궂은 성향, 과도한 스킨십 정도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졌다. 기획사들에게 확실한 수입원이 돼준다는 사실이 그가 가진 또 다른 권력의 원천이 되었던 셈이다. 위계질서가 강력하게 떠받치고 있는 연극계에서 권력을 등에 업은 성폭력은 함부로 발설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연극계 특유의 위계질서가 주는 압박감을 이겨내고 증언을 이어간다. 이는 자기 상처를 드러내는 아픔과 더불어 보복당할 수 있다는 공포, 자칫 더 이상 연극을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견뎌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연극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지지와 연대 같은 발전적 움직임도 있지만, 가해자를 옹호하거나 (연극계의 위계 구조 속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이들이 내적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배우 오동식은 이윤택의 기자회견 전에 있었던 사전회의를 폭로하면서 순식간에 많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도 공연 스태프를 폭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또 미투 선언 뒤 피해자들을 원망하는 극단 소속원들의 글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도 생겼다. 최초의 미투 선언 이후 우리가 걱정했던 2, 3차 가해가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피해는 언론 보도 과정에서 일어났다. 연극계 내 미투 선언이 주로 SNS에서 이루어지다보니 개인정보가 유출돼 사생활 침해가 심각하다. 피해자들의 신변이 불특정다수에게 공개되면 또 다른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현재 언론은 피해자 연락처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피해자가 언급하지 않은 가해자의 실명을 먼저 공개하고, 피해자 사진을 찾아 동의도 얻지 않은 채 보도한다. 심지어 당사자가 사진을 내려달라 요청해도 묵묵부답이거나 ‘SNS를 통해 공개한 내용은 보도가 가능하다’고 강변한다.
이윤택 연출가는 2월19일 사과 기자회견에서 ‘가명을 사용한 피해자의 신분을 알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 질문을 한 기자는 그것이 왜 궁금했을까. 게다가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직접 찾아가 사과하겠다는 이윤택 연출의 대답은 더 위험했다. 성폭력이 벌어진 뒤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면하는 일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 그러니 언론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신분을 지나치게 노출하는 일은 중지돼야 한다. 개인 신상이 노출된 피해자들은 혹시라도 이어질 수 있는 보복범죄 때문에 불안해하고 허위 소문에 시달리곤 한다.
미투 선언을 하다보면,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성폭력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가져와 자극적 보도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자극적 어휘와 높은 수위의 표현으로 가득 찬 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 자체가 또 다른 포르노로 소비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언론이 피해 사실을 ‘포주’ ‘채홍사’ 같은 자극적 단어를 써서 묘사하면, 피해자들은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린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본인이 폭력을 목격하고도 침묵했던 순간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선배들에게 원망과 동정심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본인의 미투 선언이 한때 함께했던 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자책, 자신이 노력했던 시간들을 자기가 부정해야 하는 등 이번 사태를 둘러싼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되려면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앞서 나가는 언론 보도 때문에 피해자들은 이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해자 법적 처벌에 그쳐선 안 돼
성폭력 문제를 다룰 때 흔히 쓰는 말이 ‘2차 가해, 2차 피해’다. 이 단어들은 성폭력 문제 해결 과정에서 생기는 피해를 폭넓게 지칭한다. 성폭력 사실을 증언할 때 수사관들이 가하는 성희롱적 발언, 동의 없이 피해자의 사생활을 노출하는 기사들이 이에 해당한다. 과열된 언론이 ‘알 권리’를 내세워 피해자들의 사생활을 들추어 추가 피해를 보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임을 인지해야 한다.
대중의 알 권리는 철저히 그것으로 얻어지는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의 자극적 묘사, 피해자 신변 노출은 공공성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연극계 내부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일, 이 사태가 단순한 관심거리로 소비되고 끝나지 않도록 차분하게 대처하는 일이 지금 언론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다.
피해자들의 미투 선언이 이어지는 동안, 연극인들은 SNS에서 발 빠르게 의사를 교환했고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기 위해 한곳에 모였다. 2월22일 출범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은 그렇게 태어났다. 여기에 자문해줄 수 있는 다양한 단체들이 협력하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상담 창구를 개설하고 법률적 자문을 받을 수 있게 돕기로 했다.
이번 사태는 가해자들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대표적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데 그친다면 언젠가 또다시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피해를 방지할 제도를 만들고 연극계의 오래된 위계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 많은 연극인이 이번 사태를 발판으로 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연극계의 문화와 체질을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들을 위한 안전망을 만들고 그들이 장기간의 싸움에 지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피해자 홀로 남지 않도록
연극인들은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노력은 신속하고 현실적으로, 연극계 생태계 변화를 위한 노력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러 트랙으로 사태의 해결책을 고안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안에 다양한 연극인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모아야 한다.
이번 사태의 해결은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사회적 관심이 꾸준히 유지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필요한 제도나 인식의 구조적 변화에는 다다르지 못한 채 피해자들만 남겨질 것이다. 피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거나 보복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회 안팎에서 이 문제에 지속적 관심과 지지를 표명해준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감정적으로 분노와 경악을 표출하는 것보다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지지하고 이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삶에 격려를 부탁드린다. 이 일을 계기로 연극계는 분명 더 건강해질 것이다.
김태희 연극평론가
▶ 한겨레21 기사 더보기
연극계 ‘미투’ 선언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조민기, 배우 이명행, 연출가 오태석(왼쪽부터).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이슈한국판 #미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