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왼쪽)이 2014년 12월15일 청와대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재판부가 부정했던 ‘김영한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이 우병우(51)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1심에서는 인정됐다. 최순실씨 1심 재판부도 이 부회장 2심이 부정했던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바 있어, 이 부회장 3심을 맡은 대법원이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1일 확인한 우 전 수석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영훈)는 지난달 22일 우 전 수석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을 증거로 활용했다. 이 수첩에는 2014년 8월 김기춘 비서실장이 김 전 수석 등에게 “씨제이(CJ) 그룹의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을 불공정거래로 의율하라”고 지시한 내용 등이 있다. 검찰은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씨제이에 대한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진술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와 관련해 이 수첩을 증거로 냈다.
우 전 수석 쪽은 “수첩은 전문증거라 김기춘의 김영한에 대한 지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해 들은 내용(전문)에 대해서는 진술자인 김 전 실장이 직접 확인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 전 실장의 지시 ‘내용’이 아니라 지시 ‘유무’를 인정할 증거로 이 수첩을 쓸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어 “수첩 내용은 박근혜, 김기춘 등 청와대 내부에 씨제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했다는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도 지난달 최순실씨 1심 선고 때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안종범에게 면담 내용을 불러줘 수첩에 받아 적었다는 사실은 면담 내용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사실이고, 수첩은 이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국정농단’ 재판부 중 이른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곳은 이 부회장 2심이 유일하게 됐다. 지난달 5일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는 ‘안종범 수첩’과 ‘김영한 수첩’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며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직접 내용을 확인해주지 않는 한, 수첩을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도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 1심과 최씨 조카 장시호씨 1심,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2심 등은 ‘안종범 수첩’을 증거로 활용했고, ‘박준우 업무수첩’ 역시 ‘김영한 수첩’과 함께 김기춘 전 실장의 1·2심에서 증거로 쓰였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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