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옥 할머니가 지난달 19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적십자 봄사 단원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얇은 다리를 모로 접고 앉은 유의옥(91) 할머니는 연신 두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며 “감사합니다. 못난 사람 찾아줘 고마워”라고 말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중년 여성 세명이 유 할머니에게 “에이그, 또 그러신다”라고 친근하게 타박했다. 설에 떡국은 드셨느냐는 질문에도 유 할머니가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자, 익숙한 듯 할머니 귀에 대고 다시 한번 크게 말했다. “어머니, 떡국은 드셨어?”
지난달 19일 경기도 고양시 한 소형 아파트에서 만난 유 할머니는 “어떤 날은 현관문을 잠그지 말고 자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아침에 못 일어나면(죽으면) 날 발견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며 할머니는 노란 조끼 여성들의 손을 놓지 못했다. 평양이 고향인 유 할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뗏목에 홀로 올라타 남쪽으로 내려왔다. 부모님과 나머지 4형제와는 대동강변에서 그렇게 헤어졌다.
노란 조끼 여성들은 대한적십자사(적십자)의 지역봉사회 회원들이다. 적십자는 2005년부터 ‘희망풍차 결연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저소득층 노인을 돌보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1인가구’, ‘고독사’ 등 사회적 관계와 단절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대두하면서, 2016년부터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위기가정을 발굴하고 보호하는 쪽으로도 사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1인가구와 이웃 사회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다.
2015년에는 적십자 제주지사에서 활동하는 봉사원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독거노인 ㄱ(84)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한 일이 있었다. 지정된 방문 날짜가 아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혹시나’ 싶어 집을 찾은 덕에 ㄱ씨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마을 전문가’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셈이다. 전국 2300여개 봉사회, 13만여명의 참여자는 예민한 신경망이자 촘촘한 그물망이다. 오순이(68) 적십자 고양행신2봉사회 전 회장은 “12대째 행신동에서 사는 토박이다. 이곳은 원룸에 사는 독거노인이 많고, 어렸을 때부터 봐온 사람들이라 집안 사정도 잘 안다. 시시때때 들러 인사한다”고 말했다.
91세의 김아무개 할아버지가 지난해 여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서 문을 열어놓은 채 더위를 견디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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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우리 지역 전문가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한 1인 고립가구 발굴 사업도 ‘지역주민과 함께’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시복지재단과 함께 1인 고립가구 발굴 시범사업을 벌였다. 금천구 가산동과 함께 관악구 대학동, 노원구 하계1동이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다. 관악구 대학동은 고시촌이 밀집한 곳으로 사법시험 준비생 등 자발적 고립을 택한 사람들이 많았고, 노원구 하계1동은 중계9단지 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취약계층이 많이 거주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가산동은 서울시에서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시범사업을 진행한 서울시복지재단의 송인주 연구위원은 “지역마다 고립된 가구들의 특성이 달라 1인가구와 이들에게 관심 가지는 사람도 특징이 다르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를 중심으로 주민들을 모았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은 동네 일에 ‘훤한’ 통장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바로 알았다.
쪽방촌이 많은 가산동에선 집주인들이 주로 움직였다. 집주인과 동네 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온통반상회’를 꾸렸다. 대부분 가산동에서 20~40년 동안 산 ‘가산동 베테랑’들이다. 이은주 가산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는 “이분들은 지역 전문가다. 복지플래너도 이들만큼 지역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 만나 주변의 1인가구 근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강영희(54) 2통 통장은 “주민센터에서 방문했다고 하면 문을 안 열어주던 사람들도 통장이나 집주인이라고 하면 문을 열어준다. 방세가 몇달씩 밀리면 ‘요새 힘드냐’고 말을 걸면서 다가갔다”고 말했다. 강 통장은 “이번 사업을 진행하면서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예전엔 월세가 밀리면 ‘왜 밀리느냐’고 짜증을 냈다면 요즘엔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부터 한다”고 말했다.
시범사업 도중 1인가구가 사망한 뒤 오래 방치되는 걸 막은 사례도 있다. 박아무개(74)씨는 치매기가 있다는 이웃주민의 전언에 따라 통장과 복지플래너가 매일 방문하는 대상이었다. 통장은 밥과 반찬 등을 싸서 매일 박씨의 안부를 물었다. 박씨는 지난해 겨울 자신의 집에서 숨을 거뒀다. 전날까지 박씨의 상태를 확인했던 복지플래너·통장·집주인이 숨진 다음날 박씨의 주검을 발견했다. 고립에 처해 죽은 뒤 방치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셈이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고립가구로 새로 발굴된 김아무개(59)씨는 사람들의 방문이 반갑다. 김씨는 사업이 실패하면서 30여년 전 이혼 등 가족 해체를 경험한 뒤 줄곧 혼자 살았다. 그는 “케어단이 오면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과 이야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급한 상황에서 연락할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가산동은 이번 사업으로 고립가구 24곳을 발굴했다. 금천구청은 시범사업 이전인 2012년부터 ‘통통희망나래단’을 운영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찾고 있다. 방문 거절 의사를 보인 가구엔 현관문에 복지콜센터 번호가 적힌 쪽지를 붙여놓는다. 쪽지가 떼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 있으면 집주인을 찾아 안부를 확인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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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가 있는 죽음으로 현행 사회복지제도는 3~4인으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상을 모델로 설계돼 있다. 1인가구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현재 고독사는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고, 정부 부처에서 관련 통계마저 없는 상황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 1인가구는 538만명(28%)이다. 2000년 225만명(15%)에서 크게 늘었다. 2020년엔 607만명(3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가 없는 죽음’인 고독사는 현재 대응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실에서 고독사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은 고독사 예방을 위한 정책의 체계적인 추진을 위하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5년마다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서울시와 복지부도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독사가 급증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전문가들은 1인가구 증가와 더불어 개인주의적 문화, 잦은 이주와 익명성이 강한 도시 환경에 따른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고독사는 사회·경제·정치적 문제가 녹아 있는 복합적 사회 문제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하나의 정책으로 단기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고독사 예방정책 마련을 위해 필요한 최우선 과제가 ‘최초 발견자와 신고자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서울시복지재단에서 2016년에 발간한 ‘서울시 고독사 실태파악 및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최초 발견자 및 신고자는 건물 관리인이거나 집주인, 가족과 친족, 이웃, 지인과 친구, 사회복지사 차례였다. 송 연구위원은 “최초 발견자와 신고자들에게 고립가구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주문할 수 있다”며 “고독사 현장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발견자들이 사전에 사회적 고립을 막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킹이다. 송 연구위원은 “고립된 가구들은 자존감을 훼손받지 않으면서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는 걸 원하기 때문에 관에서 나서기보다는 주민 참여 방식으로 접촉해야 한다”며 “집주인, 원룸 업주, 동네 통반장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위기 가구에 접근하고, 동 주민센터에서 지원할지, 주민 선에서 도울지 판단하면 된다. (위기 가구) 확인과 지원 관리라는 2단계로 나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고독사는 사회적 관계망을 회복하는 게 가장 우선이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고독사 원인을 조사하고 통계를 내고 주민들끼리 관계망을 회복하도록 예산을 지원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지난 1월19일 오전 경기 고양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한 고독사 주검의 화장이 끝난 뒤, 생전 그를 돕던 복지센터 직원이 유골함에 손을 얹고 추모하고 있다. 고양/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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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도 인권이 필요하다 고독사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숨진 채 수일간 방치된 ‘인권을 잃은 죽음’이다. 고독사의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적어도 고통스럽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막아줘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송 연구위원은 “인권의 개념이 최근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영역까지 폭넓어지고 있다. 고독사를 예방하는 것은 인권의 개념에서 봐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는데 그 과정을 혼자서 겪는다는 것은 보편적 인권에 위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삶과 죽음은 연속선상에 있다. ‘웰빙’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웰다잉’도 맞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고독사의 경우 가족 등 모든 관계망이 단절돼 애도의 시간도 거치지 못하고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현재 복지부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사망했을 경우 장제비 75만원 상당을 지원한다. 무연고자인 경우는 수급자가 아니더라도 기초단체가 장제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입관에서 발인·화장까지 이어지는 장례 ‘절차’에 드는 단순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부에선 고독사 예방뿐 아니라 고독사 주검을 최소한의 사회적 존엄을 갖춘 방식으로 장례하는 ‘존엄한 장례’를 보장하는 것 또한 고독사 대책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순둘 교수는 “고독사 대책이 이제 막 준비되는 중이기 때문에 고독사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적 차원에서 죽음 이후에 존엄한 장례까지도 대책에 포함시키는 게 옳다”며 “지역사회가 나서 마을 공동장례를 장려하는 게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연고자와 기초생활수급자의 장례를 돕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 관계자는 “현재 서울시에서 공영장례조례안을 내놨는데 그 대상에 기초생활수급자는 없다”며 “모든 사람의 죽음에 공공성을 부여해야 한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만 24시간만이라도 장례식을 치르고 애도의 기간을 거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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