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회 세계여성의날이었던 지난 8일 오후 5시 동국대 청소노동자 18명은 학교의 청소노동자 인원 감축과 근로장학생 대체 조치에 반발하며 동국대 학내에서 삭발식을 진행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 제공
동국대학교의 청소노동자 인력 감축을 둘러싼 갈등이 졸업생을 포함한 대학 구성원들 사이 의견 충돌로 번져가고 있다. 비용절감과 사회적 연대라는 두 가치관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사례라는 풀이가 나온다.
동국대 총동창회는 지난 9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30만 동문이 더 이상 관망하지 않겠다”며 “불법 점거 중인 농성자들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하고 시급히 사태를 해결해달라”고 학교 당국에 요청했다. 이들은 “학위 수여식 중 시위 등을 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애꿎은 학생들과 그들의 학습권을 담보로 불법행위를 자행하지 말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31일자로 8명의 청소노동자가 정년퇴직을 한 동국대는 새해 들어 줄어든 정원 만큼 노동자를 새로 뽑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학교 쪽은 “정년 퇴직자 인원만큼 구조조정을 하고 대신 시급 1만5000원짜리 학생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우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1월29일부터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동국대 청소노동자들 가운데 18명은 세계 여성의날이었던 지난 8일 삭발식을 했다.
정환민 동국대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돈이 덜 들어가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서 “청소노동자 8명을 충원하지 않은 학교의 방침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졸업생 가운데 일부는 “‘30만 동문’ 명의로 발표된 성명에서 이름을 빼달라”며 반발하고 있다. 윤리문화학과 졸업생 조승연(07학번)씨는 총동창회 관계자에게 보낸 문자에서 “나이든 노동자들이 피눈물 내며 집단삭발을 하는 상황”에서 총동문회의 성명에 동의할 수 없다며 “내 이름은 빼달라”고 했다. 임세환(국어교육학과 93학번)씨도 “총동문회는 사기업이나 악덕기업이 하는 행태를 학교에 주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국대 총동창회가 지난 9일 발표한 성명서에 반대하는 동문 조승연(윤리문화학과 07학번)씨가 총동창회 관계자에게 성명서에서 이름을 빼달라는 문자를 보낸 내용.
동국대 총동창회의 성명서에 반대하는 동문 임세환(국어교육학과 93학번)씨 페이스북.
‘동국대 청소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동국인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학생 이재민(24·사회학과 4학년)씨는 “총동창회 선배들도 자비와 나눔이라는 불교의 사상을 배웠을텐데, 약자들과 연대하지는 못할 망정 그런 성명서를 내다니 정말 창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동국대 민주동문회는 12일 따로 성명서를 내기로 했다. 이들은 “대학이 대학다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할 예정이다. 차한선 동국대 민주동문회 사무총장은 “교육 공간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으라고 요청하는 총동문회의 성명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동국대 총동창회의 성명서에 반대하는 동문 문가람(경영대 10학번)씨가 총동창회 관계자에게 보낸 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