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숙소가 분리되지 않고 성희롱 예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성폭력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신·출산·육아와 같은 모성 보호도 취약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에 관련 제도를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여성·이주민·노동자로 복합적인 차별 피해를 겪고 있다고 보고, 22일 상임위원회에서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구제, 성차별 금지와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지난 2016년 인권위가 여성 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이주노동자의 24.3%가 ‘남녀 숙소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답하는 등 주거 공간부터 성희롱·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고용주는 남성 1명과 여성 5명인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에게 방 두 개 짜리의 숙소를 제공했고 여성들이 방이 좁다고 항의하자 “여성 중 2명은 남성 방을 쓰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재차 항의하는 고용주는 “같은 나라 사람인데 무슨 문제냐”는 발언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사업장에서 일하다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여성 이주노동자는 11.7%로 나타났다. 피해에 대해 ‘말로 대응하거나 그냥 참았다’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한 경우가 40%였고, 관련단체나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는 적극적 대응은 8.9%에 불과했다. 성희롱 예방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여성 이주노동자의 74.6%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지 못했고, “사장님이 몸을 건드리면 피해야 한다는 것이 성희롱 예방교육의 전부였다”고 답한 경우도 있었다.
모성 보호도 취약했다. 임신한 적이 있는 여성 이주노동자 중 15.6%는 임신을 이유로 해고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산전 검사를 위해 조퇴를 요구했다 거절당한 경우도 35.8%에 달했다. 쉬운 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거나(22.2%) 과로와 유해한 작업환경 때문에 유산한 경험이 있는 경우(17.8%)도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이주노동자에게도 적용하고 있어 출산 전후휴가, 육아휴직제도 등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인권위 실태조사에서 임신,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기본권이 여성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실상 적용되지 못하는 사례들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인권위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남녀 분리된 공간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 강화 및 미비한 사업장의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 허가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실태 점검 및 다국어 교육자료 개발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사업장 변경 사유 확대 및 필요조치를 고용센터에서 주도적으로 시행 △성차별 금지와 모성보호 준수 실태 점검 및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의무교육 등 지도·감독 강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여성가족부장관에게는 이주여성의 폭력 피해를 전담하는 종합상담소를 조속한 시일 내에 설치하고, 관련 상담과 지원서비스의 연계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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